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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벤처천억기업 572개의 진실

기사등록 : 2018-11-14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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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민경하 기자 = '벤처기업이 뭘까요?' 최근 일주일간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본 질문이다.

돌아온 대답은 대부분 비슷하다. '새로운 기술로 시장에 뛰어드는 기업, 첨단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중소기업, 개척과 모험가 정신으로 설립된 신생기업....'

갑자기 벤처기업에 대해 궁금해진 이유는 지난 1일 열린 '벤처천억기업 기념행사'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부와 벤처기업협회는 지난 2005년부터 1회 이상 벤처 확인을 받은 기업(작년 기준 9만6623개사) 중 매출 1000억원 이상 기업의 경영성과를 재무제표 분석을 토대로 벤처천억기업을 선정한다. 이날 행사는 이 기업들을 축하·격려하기 위해 마련됐다.

홍종학 장관은 이날 행사에서 2017년 기준 벤처천억기업이 572개라고 발표했다. 또 이 기업들의 총매출액 합은 130조원으로 재계 4위에 해당하는 높은 성과라고 치켜세웠다. 기자가 현장에서 느낀 분위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수치였다. 심지어 '이 정도면 벤처하기 엄청나게 좋은 나라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의아한 생각이 들어 572개 기업 목록을 직접 확인해보니 벤처 출신으로는 예상하기 어려운 업체들이 눈에 띄었다. 삼표시멘트·코웨이·경동원·마니커·에몬스 등 낯익은 기업들이다. 또한 목록에 있는 다수의 기업은 30~40년 이상의 업력을 지닌 중견 업체다. 

대표적인 국가기간산업이자 과점 시장구조를 가진 시멘트산업에 벤처기업이 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 1989년 설립 이후 2012년 매각 전까지 줄곧 웅진그룹의 계열사였던 코웨이가 분류된 점도 그렇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중소벤처기업부]

국내 벤처기업은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요건을 갖췄거나 벤처기업 인증을 받은 기업만 인정된다. 물론 위 기업들은 요건을 갖췄거나 인증을 받은 기업이기 때문에 목록에 들어가는 것이 문제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반적인 벤처기업의 통념과 동떨어진 몇몇 기업까지 ''벤처기업계의 성장'으로 과대 포장해 기념할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이다. 이미 십수 년 전에 중견기업 수준으로 성장한 기업들을 벤처기업으로 인식하는 시민은 많지 않다.

여전히 국내 벤처생태계는 미완성인 상태고, 현장에서는 유망한 신생 벤처들이 대기업에 밀리거나 정착할 기반을 찾지 못해 사라지는 일이 다반사다. 여전히 많은 전문가들은 충분한 벤처 환경도 없이 창업만 유도하는 정부의 태도에 많은 지적을 하고 있다. 

차라리 매년 신규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벤처백억기업 기념행사'를 여는 것은 어떨까. 기자의 눈에는 국내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스스로 자리 잡은 신규 벤처들이 더 축하받아야 할 기업으로 보인다.

 

204mk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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