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보람 기자 = 판사들 스스로 '사법농단' 의혹 연루 판사에 대한 탄핵 소추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을 두고, 현직 판사들에 대한 비판을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사법부의 자정 노력을 통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시도란 평가가 나온다.
다만, 구체적 탄핵 대상 법관은 언급하지 않고 반헌법적 행위만 규정한 것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과거 사법부 수뇌부의 책임을 사실상 공식화했다는 분석이다.
20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 따르면 각급 법원 대표 119명으로 구성된 법관대표회의는 전날 2차 정기회의를 열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법관 탄핵소추 절차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의결했다. 이같은 의견은 전체 법관대표 재적 119명 가운데 105명이 참여해 과반수 이상 찬성을 얻어 채택됐다.
[고양=뉴스핌] 이형석 기자 = 11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국법관대표회의에는 각급 법원 판사회의에서 선출된 법관 대표 110여명이 참석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에 대한 처리 방안을 논의한다. 2018.06.11 leehs@newspim.com |
법관 대표들은 특히 탄핵 대상이 될 필요가 있는 구체적 행위를 두 가지로 규정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특정 재판에 관해 정부 관계자와 재판 진행방향을 논의하고 의견서 작성 등 자문을 해 준 행위 △일선 재판부에 특정한 내용과 방향의 판결을 요구하고 재판절차 진행에 관해 의견을 제시한 행위이다.
법관 대표들은 이같은 행위가 헌법에 보장된 재판독립을 침해하는 중대한 헌법위반이라고 보고 법관에 대한 내부 징계 절차 외에 탄핵소추절차가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의결안에는 구체적인 탄핵 소추 대상 법관의 구체적 명단을 담지는 않았다. 사법부 안팎에서는 권순일 대법관과 이규진·이민걸·김민수·박상언·정다주 판사 등이 탄핵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또 국회에도 정식으로 탄핵 소추를 검토해달라고 요구하지는 않기로 했다. 최종 의결안에 '촉구'라는 단어가 빠진 것도 같은 이유다.
법관대표회의 측 관계자는 이와 관련 "탄핵 소추는 또다른 헌법기관인 국회의 권한인데 탄핵 대상을 규정하는 것 자체가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판단했고 국회에 이를 직접 요구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법관들이 현직 주변 판사들을 탄핵 대상으로 언급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의결안을 통과시키면서도 이같은 방식을 택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내부 갈등은 최소화하면서도 사법행정권 남용을 촉발시킨 전직 사법부 수뇌부의 책임을 지적하고 국민 신뢰 회복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전직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법관 탄핵에 대한 의결안이 통과되지 않았으면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냐는 국민들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사법부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법관 대표들이 이같은 지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그는 이어 "결국 이번 의결안에는 판사들이 지적한 반헌법적 행위의 주체가 이를 지시한 사법부의 최고윗선이라는 속 뜻이 담겨있다"며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지 않으면서도 현 상황을 최대한 지적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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