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보람 기자 =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관련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당시 정권의 부당한 압력을 받고 사건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30여 년 만에 드러난 가운데, 검찰총장의 사과가 필요와 함께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권고가 나왔다.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는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사건 발생 직후 정권의 부당한 압력이 검찰총장의 지시 사항으로 전달됐고 그에 따라 초동 수사 방향이 정해져 무고한 사람을 유서대필범으로 조작한 사건"이라면서 "현 검찰총장이 강기훈에게 직접 사과할필요가 있다"고 21일 검찰에 권고했다.
검찰 /김학선 기자 yooksa@ |
과거사위는 또 "피의사실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사실과 단정적 주장을 언론에 발표함으로써 대다수 국민뿐만 아니라 법원으로 하여금 잘못된 예단을 갖게 해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을 초래했다"며 "이러한 관행에 대한 개선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수사기관의 위법 행위를 주요한 원인으로 재심 개시가 결정된 사건의 경우, 기계적으로 불복하고 과거의 공방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재심절차에 임하는 관행은 중단돼야 한다"며 "재심 절차에 관한 검찰권 행사의 준칙을 재정립하고 현재 운영 중인 '상고심사위원회'에서 과거사 재심 개시 결정이나 재심 무죄 판결에 대한 불복 여부를 심의하도록 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검찰이 강기훈을 지난 1991년 5월 8일 서강대학교 본관 옥상에서 분신자살한 고(故) 김기설(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의 유서를 대필하는 방법으로 자살을 방조했다는 범죄사실로 기소, 유죄를 선고받은 사건이다.
강 씨는 1992년 7월 대법원의 상고 기각 판결로 원심에서 선고받은 징역 3년을 확정받았다.
그러나 강 씨는 자신의 무죄를 계속해서 주장했고 이에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규명과 함께 재심 등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강 씨는 서울고법의 재심개시결정을 거쳐 대법원에서 2015년 5월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과거사위는 이같은 판결에도 수사 과정 등을 둘러싼 검찰권 행사와 관련한 의혹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판단, 이를 진상조사 대상 사건으로 선정한 바 있다.
진상조사 결과, 사건 발생 당일 긴급 개최된 '치안관계장관회의' 이후 당시 정구영 검찰총장은 전국 검찰청에 "최근 발생한 분신자살 사건에 조직적 배후세력이 개입하고 있는지 여부를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지시했다.
이에 해당 사건은 이례적으로 발생지 관할과 관계없는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됐고 강력부와 공안부 검사 등이 포함된 대규모 수사팀이 꾸려졌다.
특히 진상조사단은 이후 검찰은 유서 필적에 의문을 가진 고 김기설 유족의 수사요청보다 앞서 김 씨의 자택을 압수수색 하는 등 수사 개시 직후 '유서대필'이란 수사방향을 미리 정한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은 실제 국과수로부터 최초 필적감정결과가 도착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육안으로만 필적을 대조, 유서대필자를 강 씨로 특정했다.
수사과정에서 김 씨의 필적자료 외에 유서와 비슷한 필적 자료를 확보하고도 이를 은폐하고 필적 감정을 의뢰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필적 감정과정에서 관련 절차와 원칙을 중대하게 위반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특히 검찰이 국과수와 감정 완료 이전에 이미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감정 내용을 공유하는 것뿐 아니라 감정 완료 이전에 사실상 감정 결과를 유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에 대해 접견교통권 및 진술거부권 침해, 밤샘조사, 폭행과 폭언, 가족과 지인에 대한 위해 고지 등 인권침해와 위법 수사가 확인됐으며 검찰의 단정적인 판단에 따라 기소 이전에 위법한 피의사실공표도 비일비재하게 이뤄졌다.
검찰은 재심 과정에서도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부정하거나 검찰 측 불리한 증거자료에 대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 김 씨 유가족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아 보상금을 받기 위한 의도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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