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유수진 기자 =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서 여전히 '선(先)수주 후(後)증설'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수주 없이도 생산설비를 먼저 구축하는 '선증설 후수주'로 전략을 바꿨다는 분석이 많았으나 실제는 이와 달랐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 [사진=SK이노베이션] |
28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6일 미국 조지아주에 1조1400억원을 투자해 9.8GWh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그보다 10여일 전인 지난 14일에는 글로벌 OEM 중 하나인 폭스바겐과 전기차 배터리 수주 계약을 체결, 미국과 유럽 현지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SK이노베이션은 먼저 물량을 수주한 뒤 생산설비를 늘리는 '선수주 후증설' 전략에 따라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진행해왔다. 이미 수주가 이뤄진 물량에 맞춰 증설을 해야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지난달 SK이노베이션이 미국 현지에 배터리 공장 건설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기존 기조를 버리고 '선증설 후수주'로 사업 전략을 바꾼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특히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이 "요즘은 배터리 수요가 빨리 늘고 있어 '선수주 후증설'과 '선증설 후수주'의 차이가 의미 없다"고 말해 이같은 분석에 더욱 힘이 실렸다.
당시 김 사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업 전략을 전면 수정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선증설 후수주'를 한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지나고 보면 수주한 물량을 대는 것"이라며 "(공장을) 지어서 공급하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수요가 늘어나는 속도가 빨라 수주 없이도 공장 건설이나 증설을 추진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해당 발언은 SK이노베이션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확대 및 수요 증가에 발맞춰 선제적인 투자에 나선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하지만 이번 미국 전기차 배터리 공장 추진 과정을 보면 여전히 '선수주 후증설'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무턱대고 미국에 공장을 짓겠다고 한 게 아니다. 폭스바겐과 배터리 공급계약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지 공장 건설을 결정한 것이다. 언론보도 등을 통해 공장 건설이 외부에 먼저 알려져 '선증설'로 전략을 바꾼 듯 보였으나, 수주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미국 공장 신설을 추진한, 사실상 '선수주'였던 셈이다.
실제로 김 사장이 미국에 공장 부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한 이후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폭스바겐에 미국·유럽 시장용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게 될 거란 얘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회사 측은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았지만,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선수주 후증설' 기조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며 "이번 미국 공장의 경우도 결과적으로 그게 지켜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SK이노베이션은 올 해 들어 헝가리와 중국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착공한데 이어 이번에 미국 공장까지 짓기로 하는 등 시장 대응을 위한 글로벌 생산체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이번 미국 공장 건설 결정으로 LG화학에 이어 국내 업체 중 두 번째로 '한국-유럽(헝가리)-중국-미국'을 잇는 글로벌 4각 생산 거점을 마련하게 됐다. 이로써 현재까지 발표한 배터리 공장들이 완공되는 오는 2022년엔 총 30GWh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SK이노베이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추가적으로 25GWh 규모의 증설을 추진할 계획이다. 오는 2022년까지 총 55GWh 규모의 생산설비를 구축하는 게 목표다. 이는 현재 생산능력인 4.7GWh의 10배가 넘는 규모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생산능력을 55GWh까지 늘리는 게 목표"라면서 "어디서 수주 물량을 따내느냐에 따라 기존 공장 증설이나 신설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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