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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의 세계화 선구자들'…김환기·윤형근·이응노, '추상'에 한국의 미를 얹다

기사등록 : 2019-01-2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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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추상화에 자연을…윤형근 한국전통 미학이 추구한 '미덕'
이응노 "서양 작가의 화풍을 따라하면 그들을 이길 수 없다"
서양 사람들 눈에는 '추상'이 먼저 들어왔을 거란 시선도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란 말을 미술이 실현하고 있다. 김환기를 비롯해 윤형근, 이응노가 이를 보여줬다.

서양의 모더니즘을 한국화시킨 작가로 평이 난 1세대 단색화 작가인 김환기. 김환기의 초기 작품은 조선 백자, 산, 달, 구름을 소재로 그렸다. 그러다 뉴욕시기에 점, 선, 면을 이용한 실험 작품을 그렸고 활동 말기에 조형의 가장 기본인 '점'에 집중해 전면점화를 그렸다. 그가 그림을 그린 매체는 서양적이지만, 작품에 담긴 주제와 소재는 자연과 한국적인 것이었다. 그의 붉은색 전면점화 ‘3-II-72 #220’는 지난해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85억원에 낙찰되며 국내 최고 작품가를 기록했다. 이전에도 국내에서 최고가 작품은 김환기의 작품. 자신이 자신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제25회 서울옥션 홍콩세일에서 85억3000만원에 낙찰된 김환기의 작품. '3-II-72 #220', Oil on cotton, 254×202cm, 1972. [사진=서울옥션]

김환기 작가의 제자이자 사위였던 윤형근도 마찬가지다. 윤 작가의 작품에는 한국의 전통미와 정서를 안고 있다. 김환기의 영향을 받은 윤형근에게는 스승을 극복하고 넘어서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아름다운 별과 하늘 등 서정적인 이미지를 추구한 김환기와 달리 윤형근은 한국 전통 미학이 추구했던 정제되고 수수한 겸손하고 푸근한 ‘미덕’을 세계적으로 통용될만한 현대적 회화 언어로 풀어냈다. 아울러 한국전쟁, 유신정권, 1980년대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의 굵직한 역사를 그의 추상에 녹였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윤형근’전은 베니스비엔날레 기간 중 포르투니 미술관에 초대돼 순회전으로 한국의 미를 알릴 예정이다.

55세에 도불한 이응노 작가의 작품도 한국의 미가 짙다. 가나아트센터 장호근 큐레이터는 “선생님께서 문인화로 미술에 입문, 도불 이후 추상작업을 해왔지만 동양적인 미감을 계속 살려서 작업했다. 당시 유럽화단에서 단순히 서양 엥포르멜을 따라한 게 아니라 동양적인 미감이 묻어나 주목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다색 Umber-Blue, 1978, 마포에 유채, 270x141cm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이응노 작가는 한국의 미로 차별화할 수 있음을 믿었다. 장호근 큐레이터는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에 ‘서양 작가의 화풍을 따라하는 건 그들을 이길 수 없다’가 있다”고 말했다. 55세에 프랑스로 건너간 이응노는 당시 앵포르멜(informel) 영향을 받았다. 이를 주도한 프랑스 폴 파게티 화랑(Galerie Paul Facchetti)과 전속 작가로 계약을 맺었고, 1962년 개인전 ‘이응노, 콜라주’에서 콜라주 기법을 사용한 추상 작품을 발표해 호평을 받고 무사히 파리 화단에 자리 잡았다. 

특히 이응노는 한글과 한자를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문자추상으로 자신의 미술세계를 꽃피웠다. 그는 한자가 동양의 추상화 바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문 자체가 자연의 형태를 빌려 음과 뜻의 형태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추상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1960년대 추상 작업에서 변형된 문자들은 언뜻 사람들의 형상과 닮아있으며 1970년대의 문자추상은 사람과 융합한 형태로 독특한 패턴을 보인다. 대중에게도 익히 알려진 ‘군상’도 이와 같은 작업이 발전한 결과물이다.

최근 리안갤러리와 계약한 남춘모 작가는 독일 루드비히미술관에서 오는 6월 개인전을 연다. 안혜령 리안갤러리 대표는 남준모 작가의 해외 진출이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작품이 한국적이면서 서구의 미학을 담고 있어서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남춘모 작가는 화면 전체를 물감으로 덮는 서양화와 달리 ‘선’으로 공간감과 여백의 미를 남기는 ‘동양화’에 매료된 경험을 그의 작품 세계로 확장시켰다. 그는 ‘선’을 활용해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드는 조각품을 선보이고 있다.

구성 Composition, 1960, collage on canvas, 168 x 114 cm,  문자추상 Letter Abstract, 1977, collage on canvas, 117 x 100 cm, 군상 People, 1983, Ink on Korean paper, 101 x 200 cm(왼쪽부터)

한국의 미가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데 있어 주요한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라는 시선도 있다. 환기미술관 박예은 학예사는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 즉 ‘추상’이 크게 한 몫했다고 진단했다.

박 학예사는 “김환기 화백의 작품 속에 한국적 미감이 담긴 건 맞지만, 서양의 시각에서 전면점화를 봤을 때 그런 게 느껴지는지는 모르겠다. 추상이기 때문에 외국인들의 시선을 먼저 끌었을 거다. 추상은 무엇을 그린 건지 모르겠지만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 학예사는 추상이라는 공감 언어로 접근한 후 작가의 특징과 작품을 살펴보면서 ‘동양’이나 ‘한국의 미’와 같은 키워드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첨언했다.

이어 “김환기가 1950년대 달항아리 등 자연적인 소재와 한국적 미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서양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웠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고 보편적인 언어로 그리고자 한 게 점화로 이어지게된 이유”라고 말했다. 아울러 김환기 작가의 1970년대 그린 전면점화가 해외에서 그리고 옥션에서도 각광받는 배경과도 연결지었다.

양혜규(b.1971) <솔 르윗 뒤집기 – 1078배로 확장, 복제하여 다시 돌려놓은 K123456>(2015) 작품 앞에 선 양혜규 작가 2015 © Haegue Yang, courtesy of kurimanzutto, Mexico City 사진: Abigail Enzaldo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양혜규도 전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작품으로 사랑받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독일을 중심으로 영국, 프랑스 등에서 개인전을 비롯해 아트페어에 참여하고 있고, 영국 테이트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는 등 활발한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국제갤러리 시니어 디렉터 김정연은 양 작가가 해외에서 인정받는 이유에 대해 묻자 “양혜규는 특정 지역이나 문화, 시기이 범주를 넘어 다양한 역사적·문화적 서사를 현대적인 매체와 결합시킨다”고 답했다.

이어 “감상자들은 작품의 소재와 매체적 풍부함을 지닌 그의 조각 작업에서 수많은 문화공동체에서 고유한 방식으로 발현돼온 전통과 공예의 미덕, 산업화의 흔적을 발견하며 이에 대해 공감한다”고 해석했다.

89hkle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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