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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이른바 ‘연준(Fed) 풋’에 기대 글로벌 채권시장의 훈풍이 지속된 가운데 중국의 달러화 표시 회사채 디폴트가 20년만에 처음 발생, 트레이더들을 긴장시켰다.
미국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 정책을 배경으로 중국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통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확보했고, 경기 하강 기류와 금리 상승이 맞물리면서 ‘시한폭탄’이 터질 가능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는 경고다.
중국 실물경기가 더욱 악화, 건설업과 제조업계를 중심으로 경영난을 맞는 기업이 늘어날 경우 회사채 시장의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경고다.
미국에서는 전환사채(CB)와 물가연동채권(TIPS)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뉴욕증시가 지난해 4분기 폭락에서 급반전, 연초 이후 강한 랠리를 보이자 CB 시장으로 자금이 몰린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함께 TIPS로 뭉칫돈이 밀려들면서 시장 전문가들의 시선을 끌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인상 속도 조절에 나선 데 이어 대차대조표 축소를 조만간 종료할 뜻을 밝힌 가운데 인플레이션 상승 경계감이 투자자들 사이에 번진 것으로 해석된다.
유럽에서는 우량채 품귀 현상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19개 국가로 구성된 공동통화존의 핵심 성장 동력인 독일을 필두로 경기 적신호가 날로 두드러지면서 투자자들 사이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고조되고 있지만 최우량 등급의 회사채 공급 물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독일 국채시장이 투자자들의 매수 열기로 달아오르면서 금융시장의 왜곡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번지고 있다.
이 밖에 스페인 은행권에서 코코본드의 상환 불발 사태가 발생, 관련 채권을 매입한 투자자들이 불안감을 내비쳤다.
◆ 중국 20년만에 달러채 디폴트 ‘우려가 현실로’ = 지난달 중국 알루미늄 업체 칭하이 프로빈셜 인베스트먼트 그룹(QPIG)이 발행한 역외 달러화 표시 회사채의 디폴트 소식에 월가의 이목이 집중됐다.
중국 기업이 발행한 달러채에서 디폴트가 발생한 것은 20년만에 처음이다. 지난해 역내 시장의 위안화 표시 채권의 디폴트가 이미 급증했지만 달러채의 경우 무게감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 푸어스(S&P)로부터 투자등급보다 네 단계 낮은 B플러스 등급을 평가 받은 QPIG는 달러채 이자 1090만달러를 상환하지 못했다.
2020~2022년 사이 업체의 회사채 만기 물량은 10억달러. 투자자들은 추가 디폴트 발생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울러 이 같은 사례가 중국 기업들 사이에 확산될 경우 금융시장 전반에 패닉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시장조사 업체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이 발행한 달러화 표시 회사채 물량은 1980억달러에 이른다. 이와 별도로 투자자들 사이에 금융위기의 뇌관으로 지목된 중국 지방 정부의 부채 규모도 약 4조5000억달러로 파악됐다.
이와 별도로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1~2월 사이 중국 위안화 표시 채권의 디폴트 규모가 120억위안(18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디폴트가 1200억위안으로 사상 최고치인 동시에 2017년 대비 네 배 이상 늘어난 데 이어 상황이 날로 악화되는 양상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디폴트가 급증하는 핵심 요인으로 유동성 경색을 지목하고 있다. 기관 투자자와 은행권이 비상장 중소형 기업을 중심으로 신용 라인 연장을 거부하면서 자금줄에 비상이 걸렸다는 얘기다.
◆ 美 CB-TIPS 매입 열기 후끈 = 미국 채권시장에서는 CB 시장의 발행 및 매입 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연초 뉴욕증시의 랠리가 CB 매수 심리를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바클레이즈가 집계하는 CB 토탈리턴 인덱스가 올들어 12% 급등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CB는 특정 시점에 발행 기업의 주가가 전환 요건을 충족시킬 경우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이다.
채권 발행 기업의 주가가 앞으로 오른다는 전제 하에 지분을 저가에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때문에 투자자들은 통상 주가 상승 모멘텀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의 CB를 선별해 베팅한다.
지난해 4분기 뉴욕증시가 폭락한 데 따라 리스크 헤지와 함께 주가 상승에 따른 투자 수익을 모두 챙길 수 있는 CB를 매입하기에 적기라는 의견이 투자자들 사이에 번졌다.
다만, 올해 1~2분기 연이어 S&P500 기업의 이익이 감소, 이른바 이익 침체가 가시화될 가능성이 점쳐지는 만큼 주가와 CB에 반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얘기다.
이와 함께 TIPS의 매입 열기도 월가의 시선을 끌었다. 일례로, 지난달 21일 미 재무부가 실시한 80억달러 규모의 30년 만기 TIPS 발행에 뭉칫돈이 몰린 가운데 뮤추얼펀드와 해외 투자자들의 비중이 82%를 차지했다. 이는 역대 최고치에 해당한다.
이들이 프라이머리 딜러에 비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 것은 향후 인플레이션 상승 리스크에 대한 투자자들의 경계감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아울러 연초 1.8% 아래로 떨어졌던 30년 만기 국채 대비 TIPS의 스프레드가 1.95%까지 치솟았다. 자기 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높아졌다는 의미다.
연준이 긴축 사이클을 멈추자 과도한 금리인상이 경기 침체를 일으킬 것으로 우려했던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주시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 유럽 경기 가라앉는데 우량채 ‘품귀’ = 유럽 채권 투자자들은 우량채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동동걸음을 하고 있다.
유로존 경제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독일을 필두로 경기 악화가 날로 두드러지면서 투자자들 사이에 안전자산 수요가 확대되고 있지만 우량채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통하는 독일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지난달 0.08%까지 떨어졌다.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 분트가 서브제로 영역에 재진입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분트 수익률이 지난해 2016년 0% 아래로 떨어졌을 당시 유럽중앙은행(ECB)이 대규모 유동성 공급에 나선 바 있어 투자자들은 경기 향방과 중앙은행의 대응을 주시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시장 왜곡을 우려하고 있다. 우량 채권의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시장금리와 경제 펀더멘털에 괴리가 발생할 수 있고, 이들 채권을 담보물로 하는 레포시장이 마비 증세를 보일 것이라는 경고다.
이 밖에 스페인 최대 은행인 산탄데르 은행의 코코본드 상환 불발이 채권 투자자들 사이에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이른바 AT1(Additional Tier 1) 채권으로 불리는 코코본드는 발행 기업의 자본 비율이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질 경우 주식 전환이 이뤄지기 때문에 하이브리드 채권으로도 통한다.
금융권 구제금융에 따른 납세자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코코본드는 위기 시 주식 전환에 따른 리스크가 잠재돼 있지만 높은 수익률을 앞세워 투자 자금을 끌어들였다.
만기가 따로 명시돼 있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채권 발행 5~6년 뒤 원리금을 상환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다.
하지만 산탄데르 은행이 코코본드를 상환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투자자들은 이 같은 상황이 다른 은행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