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검찰의 권력형 비리수사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단골로 등장한다.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과 최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시킨 법이기도 하다.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죄는 1953년 9월 18일 우리나라의 형법이 제정될 당시부터 ‘타인의 권리행사방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 공무원이 자신의 직권을 남용해 부하직원 등 타인에게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하면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형을 비롯해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 받을 수 있다.
적용대상을 ‘공무원’으로 한정한 이유에 대해 학자들은 공무원이라는 신분을 고려해 일반인보다 더 엄격하게 처벌하기 위해서라고 해석하는가 하면, 일반 강요죄처럼 폭행이나 협박을 수반하지 않기 때문에 별도로 규정해야 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렇듯 직권남용죄는 66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검찰에 있어 직권남용죄는 유죄 판결을 받아내기 가장 까다로운 법 중 하나로 손꼽힌다.
기소율 자체도 낮다. 지난해 대검찰청이 발간한 통계에 따르면, 2017년 한해 직권남용죄 혐의로 입건된 1325명 중 실제로 기소된 피의자는 약 4%에 그쳤다. 같은 기간 동안 검찰의 전체 형법 범죄 기소율이 30%에 달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2018.11.20 kilroy023@newspim.com |
직권남용죄가 법조계의 ‘오르기 힘든 산’으로 불리는 건 ‘권한’의 범위가 상당히 모호하기 때문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직권남용죄 자체는 간단하지만 현실적으로 입증하기가 상당히 쉽지 않은 법 중 하나”라면서 “직권남용에 대한 기소율이 떨어지는 것 역시 반드시 기소해야 할 사람들에 대해서만 기소하기 때문에 낮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때문에 대법원은 여러 차례 직권남용죄에서 규정하고 있는 권한을 해석하는 판례를 내놓기도 했다. 현재 법원은 직권남용죄를 판단할 때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을 불법하게 행사하는 것, 즉 형식적·외형적으로는 직무집행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당한 권한 이외의 행위를 하는 경우”를 기준으로 놓는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 역시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대기업들에 대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강요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봤다. 대통령은 정부의 수반으로서 모든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직무를 수행하고, 기업체들의 활동에 있어 직무상 또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므로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구속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았다. 1심 재판부는 삼성에 대한 다스 소송비 대납 혐의 등에 대해 “다스의 미국소송을 지원하도록 지시하는 행위가 대통령의 직무권한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면서 “이는 대통령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가 될 수는 있으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김기춘 전 비서실장 역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특정 보수단체를 지원하게 하는 등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대통령 비서실장의 일반적 직무는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일 뿐, 전경련을 압박해 특정 단체에 자금지원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은 없기 때문이다. 또 청와대 내부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진 전경련 압박이 정당한 직무 집행 형식과 외관을 갖추지도 않았다고 봤다.
판사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국민들의 눈높이에서는 ‘직권의 남용’이라는 말 자체가 그럴 듯하게 들리고 모든 권력형 비리가 직권남용으로 보이겠지만 실제로 판결할 때는 1차적으로 그 법리에 충실해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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