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연구를 평생 고심해 온 경제 석학 앨런 크루거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향년 58세로 사망했다.
프린스턴대가 발표한 유족 성명에 따르면, 크루거 교수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자택에서 생을 마감하기 위해 극단적 선택을 한 상태에서 경찰에 발견됐으며 다음날 사망 선고를 받았다.
미국 경제석학 앨런 크루거 [사진=로이터 뉴스핌] |
크루거 교수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행정부 초기 재무부에서 차관보를 지냈으며,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맡았다.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에는 노동부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다.
최고 노동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크루거 교수는 이론적 경제학에 머물지 않고 록 콘서트와 테러리즘의 근원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 등 실제 삶과 맞물리는 경제학의 면모를 강조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성명에서 “앨런은 숫자나 차트 그 이상을 바라보는 심도 깊은 학자였다. 그는 경제 정책을 추상적 이론의 문제로 보지 않고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방법으로 봤다”고 밝혔다.
이론과 모델이 난무하는 경제학 세계에서 크루거는 정통으로 인정받는 이론의 허점을 이른바 ‘자연 실험’이라는 방식으로 짚어냈다.
가장 유명한 예로는 데이비드 카드 캘리포니아 버클리대(UC버클리) 교수와 함께 최저임금에 대한 자연 실험으로 논쟁을 촉발한 바 있다. 크루거와 카드 교수는 최저임금이 인상된 뉴저지주의 패스트푸드점 고용 현황을 최저임금이 오르지 않은 펜실베이니아주와 비교한 결과,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위축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해, 경제학에서 오랫동안 정설로 간주돼 온 이론에 문제를 제기했다.
크루거 교수는 2012년 CEA 위원장 당시 대통령 경제보고서에서 '위대한 개츠비 곡선' 개념을 설명했다. 이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연유한 것으로, 소득 불평등이 확대될수록 세대 간 계층 이동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을 증명한 곡선이다. 이른바 금수저·흙수저 이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동료 경제학자들은 크루거 교수의 연구는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이를 줄여주기 위한 공공 정책에 대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벳시 스티븐슨 미시건대 노동 경제학 교수는 “실업자가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으며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구직 및 고용의 경제학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을 처음 가르쳐준 사람이 크루거 교수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크루거 교수는 경제학의 인간적인 면모와 노동시장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연구했다”고 덧붙였다.
최근 수년 간 크루거 교수는 낮은 노동시장 참여율과 마약성 진통제 중독이라는 상이한 문제의 연관관계를 연구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중년 실직 남성의 거의 절반이 일상적으로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크루거 교수가 문제를 제기한 부분은 기업들이 저임금 근로자들과의 고용 계약서에서 경쟁금지 조항(non-compete clause)을 이용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 조항이 노동시장의 경쟁적 기능을 저하시킬뿐 아니라 임금상승도 억제해, ‘고용의 악순환에 갇힌 우울한 근로자들’을 양산해 낸다고 지적했다.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크루거 교수는 경제학이 일상의 다양한 삶을 어떻게 조명해내는지를 직접 보여줬다”며 “그의 죽음이 매우 안타깝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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