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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시론] ‘주주 혁명’ 불지핀 국민연금…정치적 중립성 확보가 숙제

기사등록 : 2019-03-2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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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황남준 논설실장 = 국민연금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경영권을 박탈했다.

27일 대한항공 정기주총에서 조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안이 찬성 64.1%, 반대 35.9%로 부결됐다. 주주들이 주권을 행사해 대기업 총수의 경영권을 박탈한 국내 첫 사례다.

이에 앞서 국민연금은 지난 26일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열고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했다. 조양호 회장이 기업가치 훼손 또는 주주권 침해 이력이 있다고 판단해 반대를 결정했다. 여기에 외국 및 국내 기관투자가와 소액주주가 가세했다.

조 회장은 이로써 1999년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지 20년 만에 한진그룹의 핵심기업인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잃게 됐다.

 ◆ 국민연금 캐스팅 보트… 외국 기관투자가·소액주주 연합세력

과반을 훨씬 넘는 지지를 받고도 연임안이 부결된 것은 대한항공이 정관상 이사 선·해임을 특별결의사항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특별결의사항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적용된다. 1999년 'IMF 외환위기' 직후 경영권 방어를 위해 정관을 변경해 이사 선임·해임안을 일반결의사항에서 특별결의사항으로 바꿨다. 이 조치가 20년 뒤 조 회장 사내이사 연임에 발목을 잡은 셈이다.

결국 지난 26일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가 조 회장 연임 반대 결정을 내린 것이 결국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지분 11.56%를 보유해 조 회장 일가와 특수관계인(33.35%)에 이은 2대 주주다.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은 약 24%, 소액주주의 지분은 56%에 달한 것으로 집계된다. 국민연금이 조 회장 사내이사 연임 반대안을 주도하고 여기에 외국기관투자가, 소액주주들이 힘을 합친 결과다.

 ◆ ‘오너 리스크’와 ‘주주 행동주의’ 확산의 결합

조 회장은 주주들의 투표로 물러난 사상 첫 그룹 총수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원칙)는 2017년 말 제정됐고, 국민연금은 이듬해 7월 말 이를 도입했다. 조 회장 일가의 각종 일탈 행위는 소비자와 주주들에게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쳤다.

현재 조 회장은 납품 통행세 등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또 부인과 세 남매는 '땅콩 회항', '물컵 갑질', '부정대학편입', '공사현장 업무방해' 등의 사건으로 회사 이미지와 주가 등 기업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오너 리스크’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대한항공은 특히 국민연금이 일찌감치 기업가치 하락을 막기 위한 서한을 가장 많이 발송한 기업이다. 다시말해 국민연금의 ‘요주의’ 중점 관리기업이었다.

지난 2015년 1월 '땅콩 회항' 사건, 2017년 4월 대한항공 본사 경찰 압수수색, 지난해 4월 협력업체 직원 폭행 관련 경찰 조사 국면에서 비공개 서한을 보냈다. 또 지난해 6월에는 관세청과 검찰이 조 회장 일가의 밀수 혐의 등을 조사하자 경영진 면담 요청을 위한 공개서한을 발송하기도 했다. 국민연금이 주식 보유 기업에 공개서한을 발송해 주주권을 행사한 것도 대한항공이 첫 번째였다.

주식시장에서는 이번 사례를 계기로 ‘주주 행동주의’에 한층 더 힘이 실릴 것으로 보고 있다.

주주 행동주의란 주주가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활동으로 지난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채택과 맞물려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런 흐름 속에 토종 행동주의 펀드 KCGI가 지난해 11월 등장해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전횡에 주주로서 제동을 걸기 시작하면서 주주 행동주의가 큰 흐름을 형성해 가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와 주주 행동주의의 확산에 대응해 SK와 오리온 등 일부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은 자발적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대한항공 사태를 계기로 주주 행동주의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 독립성과 전문성 낮은 국민연금…과도한 기업경영 간섭 가능성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을 타킷으로 삼아 대주주의 전횡을 저지하고 기업가치 훼손을 막아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명분을 내걸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주식시장에서의 평가도 긍정적이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과연 독립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기업 가치를 지킬 수 있는가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은 시가총액의 7%에 달하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고 SK, 현대차 등 5% 이상 지분을 가진 기업이 무려 290여 개에 달한다. 국민연금이 이런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데 정부는 지난해 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서 정작 중요한 지배구조는 그대로 두었다.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은 채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가 확대되면 정치적 논란은 더욱 확대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정부는 정치색을 띠고 기업의 경영간섭을 더욱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상위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고 위원 20명 중 5명이 현직 장·차관이다. 국민연금을 총괄 경영하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당연직으로 정치권에서 날아온다. 이런 구조로는 국민연금이 정치적 편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네덜란드 ABP, 캐나다 CPPIB, 일본 GPIF 등 대표적인 해외 연기금들은 외부 자산운용사에 의결권 행사를 맡기고 오직 수익률에 집중하거나 의결권 행사는 물론 투자마저도 외부 전문기관에 맡기는 구조다. 그만큼 연기금은 노후 자금 관리라는 설립 목적에 최적화돼 있다.

wnj777@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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