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동훈 기자 = "건물은 낡았고 도로는 좁고 주차공간도 부족합니다. 화재가 발생해도 소방차 진입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벽화나 그리고 가로등 설치하는 도시재생을 하라고 하는 걸 이해할 수 없네요. 법적 요건을 갖춰 뉴타운 지정 일몰기한 연장을 요구했는데도 서울시는 기각했습니다."
최근 뉴타운(재정비촉진지구) 지정이 해제된 수색증산뉴타운 증산4구역 주민의 이야기다.
9일 재정비사업구역 추진위원회 등에 따르면 최근 서울시의 재정비구역 해제 일몰 강화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주민들의 재산가치 상승은커녕 주거환경 개선 효과도 크지 않은 도시재생사업을 위해 뉴타운을 비롯한 정비 사업을 중단시키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의 이른바 '뉴타운 출구전략'을 위해 '시장 직권해제' 제도를 도입했다. 토지소유자 등의 3분의 1 이상 찬성이 있으면 서울시가 직권으로 구역지정을 해제하는 것이다.
윤영일 국회의원(민주평화당·전남해남완도진도)에 따르면 박 시장의 뉴타운 출구전략 선언 이후 직권 해제된 정비구역은 174곳에 이른다.
지난 2016년 4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한시적으로 도입된 시장 직권 구역 지정 해제 제도가 끝난 최근 들어서는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에 근거한 지구지정 일몰제를 활용해서 정비사업구역을 해제하고 있다.
도정법에 따르면 정비구역으로 지정한 뒤 2년 안에 추진위원회를 설립하지 못하거나 추진위를 설립한 지 2년 내 조합 설립을 하지 못하면 정비구역 지정이 해제된다.
최근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증산4구역이 대표적인 사례다. 수색증산뉴타운에 포함된 증산4구역은 전체면적 17만2932㎡로 수색증산뉴타운 내 정비구역 가운데 가장 넓다. 사업이 이뤄지면 총 2900가구의 아파트를 신축할 예정이며 이중 600가구는 공공임대로 기여하게 된다.
구역이 넓은 만큼 주민들간 내홍도 심했던 증산4구역은 결국 단기에 조합을 설립할 수 없었다. 이에 토지소유자 32%의 동의를 받아 일몰기한 연장을 요청했지만 서울시는 이를 기각했다. 조합설립 요건인 주민 동의 75%를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증산4구역 현황 [사진=증산4구역 추진위] |
증산4구역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지금은 주민 77%가 정비사업에 동의하고 있는데도 서울시가 일몰 기한 연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결국 도시재생을 하게 될 상황인데 벽화나 그리고 가로등을 설치하고 동네 지킴이를 배치하는 도시재생사업은 주민들이 원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구역지정 일몰 강행에 대해 대법원 상고심까지 패소한 증산4구역은 구역지정 일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77% 동의를 받아 조합설립 인가를 신청했지만 관할 은평구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시의 방침이 구역 해제인 만큼 자치구가 거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오는 8월쯤 구역 지정이 해제될 전망이다. 서울시와 은평구는 도시재생사업과 지역주택조합사업 그리고 역세권 공공임대 사업 등을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에서도 일몰기한을 연장하는 것은 서울시의 재량이라고 난 만큼 일부 주민들이 원한다고 해도 일몰을 해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비구역 주민들은 서울시가 도시재생사업 실적을 늘리기 위해 주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비구역을 해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만을 갖고 있다. 종로구 사직2구역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직2구역은 지난 2012년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시공자로 롯데건설을 선정하며 순탄한 사업추진을 보였다. 하지만 서울시의 입장에 따라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한양도성을 유네스코 문화재에 등재하려던 박원순 시장이 종로구에 사직2구역에 대한 사업시행변경인가 연기를 요청한 것.
이후 서울시는 도시및주거환경정비 조례를 개정해 정비구역 지정 후 여건 변화에 따라 해당 구역 및 주변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보존할 필요가 있을 때도 직권해제가 가능토록 했다. 이어 2017년 3월 사직2구역 정비구역지정을 직권해제했다.
이에 주민들은 2017년 5월 서울 행정법원에 직원해제 무효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역사·문화적 가치 보존은 정비사업 추진과 직접적인 법률상의 관계가 없다'며 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 서울시가 제기한 고등법원 항소심에서도 서울시는 패소했다.
사직2구역 정비구역 지정해제 무효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이르면 오는 5월이나 6월 날 예정이다. 하지만 정비구역 주민들이 승소한다고 해도 재개발사업은 '물건너 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역지정이 해제된 사직2구역에는 신축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어서다. 이들 빌라 소유자들이 정비사업 추진에 반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 신축 빌라의 수에 따라 정비구역 지정 요건인 노후도 조건을 상실할 수도 있다.
현지 중개업소 관계자는 "가뜩이나 구역지정에 반대하고 있는 서울시로선 이같은 '호재'를 활용해 정비구역 해제를 지속해 추진할 것"이라며 "시의 '뒷통수'에 구역 주민들이 당한 셈"이라며 다소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밖에 서울시가 '위법'한 직권해제를 추진하고 있다는 논란도 나온다. 관악구 봉천14구역에서는 일부 주민들이 토지소유자 3분의 1이상 동의를 갖춰 구역지정 직권해제를 신청했는데 서울시가 이를 수용했다. 하지만 이들 주민들이 직권해제를 신청한 시기는 직권해제 제도가 만료된 2018년 1월 2일이었다. 이는 엄연한 불법 사항에 해당한다는 게 정비사업 추진위원회 측의 이야기다.
이같은 서울시의 정비구역 지정 해제 움직임은 보다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서울형 골목길 도시재생사업을 공식 발족하는 것처럼 서울시의 도시재생사업이 더 강화될 예정이라서다.
서울시 관계자는 "철거 개발을 지양하고 도시재생에 역점을 두겠다는 게 서울시의 방침"이라며 "앞으로도 보존활용을 기본으로 각 구역에 알맞은 주거환경 개선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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