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18세기 조선에서 제작된 천체 관측 기구 혼개통헌의가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혼개통헌의를 비롯해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 등 고려~조선시대 회화와 불상, 초기 철기시대 거푸집과 청동거울, 통일신라 시대 도기 등 총 7건을 보물로 지정예고한다고 29일 밝혔다.
혼개통헌의(전면) [사진=문화재청] |
혼개통헌의는 해시계와 별시계를 하나의 원판형 의기(천체의 운동을 관측하는 기구)에 통합한 천문 관측 도구로 제작 사례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알려져 있다. 중국을 통해 전래된 서양 천문시계 아스트롤라베를 실학자 유금(1741~1788)이 조선식으로 해석해 1787년(정조 11년) 만든 과학 기구로 1930년대 일본인 토기야가 대구에서 구입해 반출했으나 2007년 고 전상운 교수의 노력으로 국내에 환수됐다.
또한 혼개통헌의는 별의 위치와 시간을 확인하는 원반형 모체판과 별의 관측지점을 알려주는 여러 모양의 침을 가진 T자 모양의 '성좌판'으로 구성된다. 모체판 앞뒤에 걸쳐 '건륭 정미년에 약암 윤선생을 위해 만들다'는 명문과 '유씨금'이라는 인장이 새겨져 유금이 약암이라는 호를 쓴 윤선생(실명 미상)을 위해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혼개통헌의(모체판과 성좌판) [사진=문화재청] |
이밖에 밤 시간에 특정한 별을 관찰하는 규형, 별의 고도(위치)를 확인하는 정시척도 함께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모체판과 성좌판만 남아있다.
모체판은 앞면 중심에 하늘의 북극을 상징하는 구멍에 핀으로 성좌판을 끼워 회전하도록 만들어졌다. 외곽을 24등분해 맨 위에 시계방향으로 시각을 새겼고 바깥쪽부터 남회귀선, 적도, 북회구선의 동심원, 위쪽에 지평좌표원을 새겼다. 성좌판은 하늘의 북극과 황도 상의 춘분점과 동지점을 연결하는 T자형으로 축과 황도를 나타내는 황도원을 한판으로 제작했다. 특정 별과 대조할 수 있도록 돌출시킨 지성침이 11개 있다. 뒷면의 윗부분에는 '북극출지 38도'란 위도를 새겼는데, 곧 서울(한양)의 위도 37.5도에 해당한다.
모체판과 성좌판에 새겨진 별자리는 기본적으로 '혼개통헌도설'에 근거한 것이지만 유금은 한국 실정에 맞도록 독자적인 별을 그려 넣기도 했고 중국 책의 실수를 바로 잡아 반영하기도 했다.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 [사진=문화재청] |
혼개통헌의는 아스트롤라베라를 받아들여 동아시아에서 제작된 유일무이한 천문 도구이자 서양 천문학과 기하학을 이해하고 소화한 조선 지식인들의 창의적 성과를 보여주는 실례다. 제작 원리와 정밀도에 있어서도 18세기 조선의 수학과 천문학 수준을 알려주는 소중한 과학 문화재다.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는 18세기 후반~19세기 초 궁중화원으로 이름을 떨친 이인문이 그린 것으로 총 길이 8.5m에 달하는 긴 두루마리 형식의 그림이다. 조선말기 학자 추사 김정희가 소장했던 것으로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전통적 화제인 '강산무진'을 주제로 끝없이 이어지는 대자연의 경관을 형상화했다.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 [사진=문화재청] |
신편유치대동시림 권9~11, 31~39는 총 70권 중 권9~11 및 권 31~30에 해당하는 책이다. 1542년(중종 37)경 쓰인 금속 활자 '병자자'로 간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판본이다. '동문선'에 수록된 시 원문과 비교할 때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 16세기 한국 시문집 간행의 과정을 살펴보는데 중요한 서책으로 판단된다.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은 고려 말~조선 초 유행한 두건을 쓴 지장보살좌상이다. 고려 말기 조각 양식을 충실하게 반영한 것으로 조형적으로 우수할 뿐만 아니라 보주를 든 두건 지장의 정확한 도상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여말 선초의 지장 신앙과 지장도상 연구에 귀중한 사례다.
한편 문화재청은 보물로 제정 예고한 '혼개통헌의' 등 총 7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게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 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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