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선엽 기자 =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6년 2월 테러방지법 본회의 처리를 막기 위한 국회 본회의 무제한토론, 이른바 필리버스터가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당시 야당 의원들은 국회법이 보장하는 필리버스터를 통해 장장 192시간27분 동안 법안 처리를 저지했습니다.
패스트트랙이 다수당의 공격 카드라면 필리버스터는 소수당의 수비 카드입니다. 둘 모두 2012년 5월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주도로 도입된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도입됐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법안이 야당의 반대로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일단 상정만 되면 다수당인 여당이 본회의에서 머릿수로 통과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걸 막겠다고 야당 의원들이 국회 의장석을 점거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29일 저녁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회의가 예정된 220호에서 문체위 회의실로 변경되어 열리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바른미래당 유승민, 오신환 의원 등이 급히 달려와 회의장으로 입장하려 하며 국회 경위들과 충돌하고 있다. 2019.04.29 leehs@newspim.com |
국회선진화법은 18대 임기 종료를 앞두고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의회 자성 차원에서 마련한 법으로 '날치기의 핵심 주범'으로 꼽혔던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강화했습니다.
천재지변이나 국가 비상사태를 제외하면 각 교섭단체 대표의 합의가 없을 경우 직권상정을 할 수 없도록 못 박았습니다.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7년간 '동물국회'가 없어진 것이 이 때문입니다.
국회선진화법은 이처럼 직권상정 요건을 엄격히 하면서 동시에 패스트트랙도 함께 도입했습니다. 여야 간 합의가 어려운 쟁점 법안이 국회에서 오랜 기간 표류하는 걸 막기 위한 취지입니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 최대 330일 안에는 본 회의에서 결판이 납니다. 우회로를 열어놓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국회선진화법은 야당에게도 수비 아이템을 하나 마련해 줬는데 그것이 필리버스터입니다.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서명한 요구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하면 필리버스터가 가능합니다. 2016년 2월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가 비상사태라며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했고 야당이 필리버스터로 이것을 지연시킨 것입니다. 다만, 결국 법안은 통과됐습니다.
이번에 패스트트랙에 올라탄 선거법은 올 연말이나 내년 초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입니다. 이번에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필리버스터를 통해 선거법 처리를 막아설 가능성도 있습니다.
선거법이야말로 국회의원들 본인의 생사가 달린 법이므로 한국당 의원들이 2016년 민주당처럼 저력을 보여줄 가능성도 있습니다. 민주당이 필리버스터 마케팅으로 2016년 총선 승리를 거머쥐웠듯이 한국당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