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주연 기자 = “이제 정말 평가만 남았어요. 그게 뭐든 모두 다 받아들여야죠.”
배우 라미란(44)이 첫 스크린 주연작 ‘걸캅스’를 들고 극장가를 찾았다. 오늘(9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48시간 후 업로드가 예고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되는 코믹액션물. 경찰마저 포기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뭉친 걸크러시 콤비의 비공식 수사를 다뤘다.
“첫 주연작이라고 생각처럼 마냥 좋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부담스러웠죠. 차라리 지금이 편안해요.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정말 촬영할 때는 너무 힘들었어요. 특히 첫 촬영 때는 어떻게 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사실 조연일 때는 신이 많지 않으니까 치고 빠지면 되는데 이건 계속 치기만 해야 했죠(웃음). 이러다가는 저도 보는 사람도 지쳐 나가떨어지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중간쯤부터 조절하면서 찍어 나갔죠.”
극중 라미란은 미영을 열연했다. 1990년대 여자 형사 기동대에서 에이스로 맹활약했던 전설의 형사.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출산과 육아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민원실 주무관이 된 인물이다.
“여성이 중심이라는 점, 현직 형사가 아니라는 점이 타 형사물과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장르 특성상 전개나 결말은 빤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 빤하고 투박스러운 부분이 클래식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연기할 때도 특별한 변형을 주지 않으려고 했고요. 단 미영이 이 사건에 뛰어든 계기만큼은 중요하게 잡고 갔죠. 미영이 수사를 시작한 이유, 남녀를 떠나 피해자들이 2차, 3차로 상처받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탓하잖아요. 거기서 온 분노에 집중했어요.”
이번 영화의 빠질 수 없는 관전 포인트는 라미란의 액션 연기다. 범인을 쫓는 과정에서 라미란은 고강도 액션을 소화해내며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액션스쿨을 한 달 정도 다녔어요. 계속 연습했죠.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연습으로 기본기를 다지니까 촬영할 때는 조금 편했어요. 합이 바뀌어도 금방 적응할 수 있었죠. 물론 처음에는 ‘할 수 있을까?’ 싶으면서 부담됐는데 칭찬에 또 허세가 차서 혼자 2탄을 하느냐 마느냐 하고 있어요(웃음). 근데 확실히 액션이 힘들어도 재밌긴 해요. 제가 또 워낙 익사이팅한 걸 좋아해서 잘 맞더라고요. 다음에는 조금 더 거친 액션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걸캅스’는 개봉 전부터 시의성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실제 영화의 핵심 사건인 마약, 몰래카메라 등의 문제는 최근 세간을 들썩인 ‘버닝썬’ ‘정준영 단톡방’ 사건과 유사하다.
“마약, 불법 동영상 등이 요즘 이슈가 돼서 그렇지 꽤 오래된 문제라고 해요. 계속 일어난 일인 거죠. 사실 저도 사회, 정치 문제에 관심이 없어요. 오히려 이런 작품을 하면서 배워가죠. 저 역시 예전에는 ‘클럽을 안가면 되지’라는 잘못된 생각을 했어요.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거죠. 건전하게 갈 수 있는 클럽을 만드는 게 먼저인 거예요. 한편으로는 경각심도 갖게 됐고요. 오락영화이긴 하지만, 관객들에게도 그런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으면 해요.”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는 라미란의 첫 주연작이다. 서울예술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그는 그간 수많은 무대에서 감초 역할을 했다. 2005년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에 출연한 후에는 활동 반경을 무대에서 스크린으로 넓혔다. 여러 오디션에 응하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채워 나갔고 마침내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왔다.
“운이 좋았죠. 늘 좋은 작품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어요. 사실 실력 차이는 미미해요. 다만 그걸 발현할 기회를 얻는 게 힘든 거죠. 정말 감사하게도 제겐 그 기회가 왔고 하는 것마다 주목받게 된 거예요. 연기야 뭐 늘 재밌어요. 매번 다른 사람으로 사는 게 흥미롭죠. 제가 뭐든 쉽게 질려 하는 스타일인데 직업 선택을 잘한 거죠. 이런 직업이 어디 있어요? 비운의 여인도 됐다가 산악인도 됐다가 버라이어티하잖아요(웃음).”
오래 쉬면 오히려 불안해진다는 라미란은 영화 ‘정직한 후보’를 차기작으로 정했다. 연말에는 드라마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그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계속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늘 그랬듯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전 연기에서도 삶에서도 ‘자유’와 ‘방관’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 뭔가 되려고 발버둥 치지 않는 거죠. 무언가 되려는 순간 어색해지는 듯해요. 그래서 늘 자유롭고 가벼워지려고 하죠. 제 모토도 가늘고 길게, 있는 듯 없는 듯 평생 연기하는 거예요. 근데 최근에 너무 도드라졌죠(웃음). 이제 누군가에게 내려 쳐질 일만 남았구나 싶어요. 근데 이렇게 된 거 내리침 당할 때까지 더 비집고 나가려고요. 겁 없이 갈 때까지 가보는 거죠.”
jjy333jjy@newspim.com [사진=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