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법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수사자료를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태종(59·15기) 부장판사가 첫 재판 절차에서 검찰의 공소장이 ‘일본주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정문성 부장판사)는 22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이 부장판사에 대한 1차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이 부장판사 측은 “피고인이 전혀 알 수 없는 사실, 기수에 이른 이후에 벌어진 사실까지도 모두 다 기재함으로써 법관에게 안 좋은 예단을 형성하게 하고 있다”면서 “양승태·고영한·임종헌 세 사람이 어떤 의식을 가졌는지는 이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고, ‘윗선’과 피고인 사이에 연결점이 있다는 것도 검찰의 추측일 뿐”이라는 일본주의 위반 주장을 펼쳤다.
공소장 일본주의(公訴狀一本主義)란 검사가 공소 제기할 때 공소장 하나만을 법원에 제출하고 기타의 서류나 증거물은 제출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판사가 피고인에 대해 어떠한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 주장은 앞서 재판이 진행된 ‘사법농단’ 사건 피고인들의 주장과 대동소이하다. 관련자 중 가장 먼저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물론이고 ‘최정점’으로 꼽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등이 모두 이 같은 주장을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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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검찰은 “이 사건 역시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한 ‘사법행정권 남용’이라는 일련의 범행에 속하는 것으로서, 범위나 공모관계·동기·경위를 명확히 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적시할 필요 있다”고 일축했다.
이어 “피고인은 검찰의 수사진행 상황이나 향후 수사방향을 알 수 있는 수사 자료뿐 아니라 기밀을 빼돌려 법원행정처에 전달했다”며 “국가의 수사기능과 재판 기능 저해할 구체적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을 초래했기 때문에 이 같은 사실을 반드시 기재할 필요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변호인 측 의견을 일부 받아들여 검찰에 공소장 수정 검토를 지시했다.
앞서 이 부장판사는 2016년 서울서부지법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정운호 게이트’가 사법부 비리로 확대될 조짐이 보이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수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지난 3월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 부장판사는 검찰이 당시 서울서부지법 소속 집행관들의 금품수수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인 것을 알게 되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이를 보고했다. 임 전 차장으로부터 수사 진행상황과 사법부 전체로의 수사 확대 여부를 보고해달라는 지시를 받은 이 부장판사는 기획법관을 통해 수사 기밀을 행정처에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법원은 지난 3월 이 부장판사를 재판업무에서 배제시켰다.
이 부장판사에 대한 다음 재판은 내달 20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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