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유리 기자 =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기로 하면서 국내 은행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기업대출에서 제조업 비중이 40% 가깝게 차지하는 상황에서 제조업이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은행들은 대출 만기 연장, 추가 자금 공급 등 피해 기업 지원을 우선적으로 하되, 수출산업 전반에 대한 리스크 점검도 강화하고 나섰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들은 이날 오전 일본 수출규제 대책 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지난 주말 내놓은 일본 수출규제 지원책 가동을 점검하고, 여신 리스크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한 은행 여신관리담당 임원은 "초유의 사태라 나름대로 굉장히 긴장하는 상황"이라며 "일단은 피해기업 영향을 최소화시키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한은행,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등은 지난 3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주재하는 '일본 수출규제 대응 간담회' 이후 금융 지원책을 내놨다. 각 은행은 전담 TF나 특별대책반을 꾸리고 이를 중심으로 피해기업에 대한 신규 자금 지원, 대출 상환 유예, 금리 감면 등을 시행하기로 했다.
은행들이 금융지원에 나선 것은 일본 수출규제 피해가 경제 전반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수출 규제 품목의 수급이 어려워진 반도체, 디스플레이뿐 아니라 제조업, 수출산업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될 경우 여신 건전성이 급속도로 나빠질 수 있다.
시중은행 리스크총괄 부행장은 "대기업보다는 관련 하청부품업체 중심으로 건전성이 안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에 반도체, 부품, 자동차, 기계장비 산업에 대해 타이트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기업대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은행연합회 은행통계정보시스템의 업종별 대출채권 현황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올해 3월말 기준 제조업 대출 규모는 326조원이다. 전체 기업대출(871조원)의 37.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181조원인 부동산 및 임대업 대출보다 규모가 크다.
물론 당장 건전성에 비상등이 켜진 것은 아니다. 선제적인 부실 관리로 시중은행들의 제조업 대출 연체율을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3월말에서 올 3월말까지 신한은행의 제조업 대출 연체율은 0.45%→0.37%로 개선됐다. 같은 기간 KB국민은행은 0.47%→0.30%로, KEB하나은행 0.63%→0.41%로, 우리은행은 0.55%→0.44%로 줄었다.
문제는 일본의 수출 슈제가 장기화될 경우다. 제조업 불황이 이어지면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들에게도 부실 여파가 밀어닥칠 수 있다. 경제성장률과 실물경제 전반이 위축되면서 개인사업자 대출과 가계대출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최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와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장기화로 반도체 생산이 10% 감소할 경우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약 0.27~0.44% 줄어들 것으로 추산됐다. 만약 해외 경쟁기업이 한국의 반도체 생산 차질에 따른 공급 부족분을 대체한다면 GDP가 0.44% 감소해 그렇지 못할 경우(0.27%)보다 감소폭이 커진다는 것이다.
금융지주 관계자는 "국내 기업금융은 제조업 기반 익스포저(노출위험액)가 가장 크다"며 "한일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제조업에서 수출산업 전반으로 영향이 확산되고 금융권 건전성이나 성장률도 꺾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송두한 NH농협금융연구소 소장은 "대출만 해주는 것은 부채건전성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일본 의존도가 높은 부품소재의 국산화를 위해 투자를 확대하고 새로운 성장 기회로 만들어 가야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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