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민경하 기자 ="석탄재는 시멘트업계에 가장 중요한 원료 중 하나입니다. 수입을 중단한다면 시멘트 생산도 중단해야 합니다"
한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최근 불거진 일본 석탄재 수입 논란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누군가에게는 폐기물일 수 있지만, 시멘트 업계에는 '불화수소'같은 존재"라며 "오히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석탄재 공급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6일 시멘트 업계의 일본산 석탄재 수입에 대한 논란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일본 수출 규제 조치로 불매운동이 계속되는 가운데, 시멘트 업계가 산업 폐기물인 석탄재를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고 들여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일본 석탄재 수입제한' 청원 참여 인원은 10만명을 넘어섰다. 해당 청원은 "시멘트 업계가 일본의 석탄재를 보조금 받는 재미에 수입하는 동안, 우리나라 발전소의 석탄재는 재활용이 안되면 매립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석탄재 수입을 제한해 국내 폐기물의 재활용 비율도 높이고 일본에 무역보복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여론에 대해 업계에서는 일부 왜곡된 사실이 많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부는 수입되는 일본산 석탄재에 대해 방사능·중금속 검사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몇몇 쟁점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해봤다.
쌍용양회 동해공장 전경 [사진=쌍용양회] |
▶ 석탄재는 일본산 쓰레기다?
석탄재는 보통 발전소에서 유연탄을 태우면 남는 것을 뜻한다. 석탄재는 산업폐기물이지만, 활용도는 매우 높은편이다. 시멘트의 필수 원료는 크게 4가지로 석회석·규석·점토·산화철이 있는데, 석탄재는 점토를 대체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성질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히려 점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광산을 개발해야 하는데, 개발이 어려울 뿐더러 이또한 자연파괴라는 것이 업계의 입장이다. 해외 유수의 시멘트업체들 또한 석탄재를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레미콘 업계도 석탄재를 사용한다. 화력발전소 등에서 태우고 남은 석탄재 중 일부인 '플라이애시'(비산재)를 수거해 특수 정제 과정을 거치면 일종의 혼화재를 생산할 수 있다. '플라이애시'는 레미콘의 유동성을 좋게 하고 더 강한 결합력을 가지게해 고품질 레미콘을 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건설기초소재로 꼽힌다.
이에 국내 시멘트 업체들은 점차 일본산 석탄재 수입량을 늘려오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시멘트 업계의 일본산 석탄재 수입량은 지난 2009년 79만톤에서 2015년 134만톤까지 늘어났고, 지난 2018년에는 128만톤을 수입했다. 지난해 수입된 석탄재로 생산한 시멘트는 약 2200만톤에 달한다.
일본산 석탄재를 수입한다고 해서 돈을 지불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돈을 받는다. 업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일본 석탄화력발전사들은 국내 시멘트 업체에 석탄재 1톤당 5만원의 처리비용을 준다. 일본 내 처리비용이 20만원 수준으로 매우 높은 편이라, 일본 발전사들이 1/4 가격을 지불하고 국내 시멘트 업체에 넘기는 것이다. 국내 업체들이 1톤당 5만원씩 받고 난뒤 수송·통관 등 다양한 비용을 제하면 오히려 1톤당 1~2만원 정도가 남는다. 지난해 시멘트 업계가 이러한 방식으로 번 돈은 약 250억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 국내산 석탄재는 남아서 매립한다?
국내에도 화력발전소는 많고, 석탄재 또한 많다. 국내 석탄재 발생량은 지난 2016년 904만톤에서 2018년 938만톤까지 늘어났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많은 석탄재를 시멘트업계가 사용하지 않아 매립 비용이 발생하고 환경도 오염된다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시멘트 업계는 최대한 국내산 석탄재를 사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국내산 석탄재 재활용량 또한 지난 2016년 762만톤에서 2018년 831만톤까지 늘어나는 등 85% 이상의 재활용률을 보이고 있다. 국내산 석탄재를 사용 하는 업종으로는 시멘트·레미콘·콘크리트 제조업 등이 있다.
나머지 약 15% 안팎의 석탄재를 사용하지 못하고 매립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먼저 석탄재 운송문제다. 국내 발전사가 석탄재 매립에 사용하는 평균 비용은 1t당 1만원 수준으로 물류 비용보다 절반정도 저렴하다. 발전사 입장에서는 물류비용을 내느니 매립하는게 나은 것이다. 게다가 일부 해안가 쪽 발전사들은 석탄재를 해수로 식히기 때문에 석탄재 염도가 높아 시멘트 생산에도 부적합하다.
또 하나는 수요·공급 문제가 있다. 시멘트는 주로 건설 현장이 많아지는 여름에 주로 생산하지만, 화력발전소는 날씨가 추운 겨울에 석탄을 더 많이 소비한다. 필요한 시기와 생산되는 시기가 달라 사실상 서로 필요할 때 없는 셈이다. 현재 시멘트 업계의 국내산 석탄재 사용률은 전체 석탄재 사용량의 약 60%로, 점차 늘리는 추세에 있다.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전경 [사진=환경부] |
▶ 전문가들 "일본산 석탄재 규제 도입 신중해야"
정부는 일본산 석탄재의 방사능·중금속 검사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지금까지는 일본산 석탄재 일부에 대해서만 검사했지만, 앞으로는 전수조사하는 방안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산 석탄재에 대한 여론의 불안감을 반영한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이재기 대한방사선방어학회 연구소장은 일본산 석탄재에 대한 방사능 피폭 우려에 대해 오해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천연 광물에는 일정량의 방사능 수치가 있고, 보통 석탄과 같은 광물은 일반 토양보다 방사능 수치가 약간 높다"며 "농축된 석탄재에서 소량의 천연 방사능이 검출되는 것은 국내산이나 일본산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방사능 물질 중 우라늄, 토륨 등은 시멘트를 고온으로 제조하는 과정을 거쳐도 사라지지 않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일본 또한 대부분의 석탄을 수입하는 상황에서, 일본산 석탄재에 더 많은 방사능이 검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홍수열 자연순환경제연구소장은 석탄재 수입 문제는 산업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여론이 일본산 석탄재 방사능 문제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를 해소할 수 있도록 검사를 강화하는 것은 지극히 필요하다"며 "하지만 최근의 여론은 감정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사실상 석탄재는 시멘트 산업의 원료 중 하나고, 시멘트 업계는 국내산 석탄재를 최대한 당겨 쓰고 있는 상황"이라며 "만약 일본산 석탄재 수입을 규제한다면 국내산 석탄재를 사용하는 레미콘 업계나 콘크리트 업계는 물론, 건설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원료의 수급문제, 배분문제 등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최소화 하는 관점으로 진행되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단순히 일본에 피해를 주기 위해 우리 산업의 피해를 강요하는 '아베'식 규제는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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