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백진엽 기자 = 2012년은 SK그룹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한 해다. 최태원 SK 회장이 경영난을 겪고 있던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하기 위해 3조400억원 가까운 자금을 투입하는 '통 큰 결정'을 내린 것. 당시 하이닉스는 손실이 쌓이는 회사였다. 설상가상 메모리 시장의 불황으로 회생 가능성을 높게 보는 사람도 적었다. SK그룹 기존 사업들과 반도체의 연관성도 없어 보였다. 이런 이유로 당시 SK그룹 경영진은 물론 외부 인사들도 하이닉스 인수를 말리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 회장은 굽히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는 최 회장과 SK그룹에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성공적인 투자 중 하나로 꼽히게 됐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매출액은 연결기준으로 40조4451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매출액의 절반이 넘는 20조8438억원이다. SK그룹 계열사 중 가장 효자로 성장한 것이다.
투자업계에서는 "결과론으로 들릴지 몰라도 최 회장이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사이클,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메모리반도체 수요 확대 등을 정확하게 예상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인수는 최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한눈에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SK그룹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최 회장은 어떤 사안을 결정하기 전에는 스스로 공부도 많이 하고, 주변에 많은 조언을 듣는다"며 "하지만 이것이 옳다고 결정한 이후에는 뚝심 있게 추진해 성사시키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22일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이천포럼마지막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인공지능 등 혁신기술을 활용, 딥 체인지를 가속화하자고 말했다. [사진=SK] |
◆"옳다고 생각하면 뚝심 있게 추진…하이닉스 인수·사회적 가치 전파가 대표적"
최근 최 회장이 가장 중요시하고 열심히 전파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도 마찬가지다. 이 관계자는 "최 회장이 어느 순간부터 기업이 돈을 많이 벌어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상의 개념인 '사회적 가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며 "기업이 가지고 있는 자산이나 노하우를 사회적 가치 창출에 사용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는지, SK그룹을 바꾸기 시작했고 나아가 전 세계를 다니면서 사회적 가치에 대해 전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사회적 가치 창출을 기업의 당연한 의무라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2019년 SK그룹의 신년회에서도 역시 화두는 사회적 가치였다. 최 회장은 SK가 건강한 공동체로서 가능하면서 동시에 행복을 더 키워 나가는 방법으로 사회적 가치를 제시했다.
최 회장은 사회와 SK 구성원의 행복을 키워 나가는 4가지 행동원칙으로 △회사의 제도 기준을 관리에서 행복으로 바꿀 것 △평가 요소 중 사회적 가치 비중을 50% 늘릴 것 △구성원의 개념을 확장할 것 △작은 실천 방법들을 만들어 나갈 것 등을 제안했다. SK그룹은 행복창출 방법론으로 사회적 가치를 통한 비즈니스 모델 혁신과 글로벌 성과 창출 등 국내외 경영환경 변화에 따른 경영전략을 실행해 나가기로 했다.
SK의 사회공헌 전문재단인 '행복나눔재단'은 그동안 사회적 기업 육성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직접 8개의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400여 개의 파트너 사회적 기업에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ing), 판로 및 인센티브 지원 등을 하고 있다. 임팩트 투자는 사회문제 해결을 추구하는 기업에 투자해 수익도 얻고 사회적 가치 창출에도 이바지하기 위한 투자를 뜻한다.
‘행복나눔재단’은 사회 전체에 분산된 사회공헌 활동 및 자원∙역량을 결합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SK하이닉스, SM엔터테인먼트, LH공사 등 35개 기업과 함께 사회공헌연합체 ‘행복얼라이언스’를 결성했다. 이를 통해 결식이웃 대상 도시락형 공공급식 사회적 기업 ‘행복도시락’과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방과후학교 사회적 기업 ‘행복한학교’를 통해 아동의 영양 개선과 교육 질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
SK는 지속가능한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한 생태계 조성 차원에서 △사회적 기업가 육성 △자본시장 형성 △창출한 사회적 가치 측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회적 기업가 육성’을 위해 2012년 세계 최초로 KAIST와 공동으로 ‘사회적 기업가 MBA’ 과정을 개설했다. 졸업생의 86%가 실제 창업을 했고, 그중 10개는 투자 유치에도 성공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연세대와도 손잡고 사회적 가치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혁신인재 양성 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시작했다.
아울러 '자본시장 형성'을 위해 2015년부터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등 사회적 기업 분야 파트너들과 함께 사회적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화폐 단위로 측정해 그에 상응하는 금전적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사회성과인센티브’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어워드에서는 130개 사회적 기업에 73억원의 인센티브를 지원했다.
올해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성과가 나왔다. 지난 5월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시스템 개발을 1차적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당시 SK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하이닉스가 지난해 12조원 규모의 사회적 가치 창출 성과를 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SV(Social Value)위원장은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이유에 대해 "기업이 경제적 가치와 마찬가지로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려면 지표와 기준점이 필요하다"며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만들기 위해 비즈니스와 관련된 사회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비즈니스 모델 혁신 기회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이 사회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이유는 '장기적인 기업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오랫동안 기업이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신년회에서 최 회장은 "미래 고객은 사회적 가치를 중시할 것이고, 앞으로는 사회적 가치가 상품 가치를 좌우하는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고객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했다.
최태원 SK회장은 SOVAC2019 행사에서 사회적 가치에 대해 강조하며 이를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계속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SK] |
◆"SK만으로는 부족, 인센티브 도입 등 모든 사회 나서야"
최 회장의 노력은 SK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모든 기업의 사회적 기업화'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전도사가 돼 '사회적 기업, 사회적 가치'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매년 다보스포럼이나 보아오포럼 등에 참석해 기업의 사회문제 해결, 사회적 기업 생태계 창출 등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2월 글로벌 지속가능 발전 포럼에서 최 회장은 "기업들이 혁신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SK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니 더 많은 영리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시장 원리가 적용되는 환경을 조성해 나가는 것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최 회장의 '사회적 가치' 알리기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해당 사안을 본인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홍보에 여념이 없다. 최 회장은 한 국제 포럼에서 사회적 기업 개념을 접한 이후 자주 “내가 평생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말할 정도로 사회적 기업 생태계를 키우는 데 노력해 왔다. 2014년에는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이라는 서적을 직접 저술할 정도로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최 회장은 2017년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사회적 기업 국제 포럼’에 기조연설자로 나서 '10만 사회적 기업 창업'을 주창했다. 사회적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사회적 기업 경제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3% 수준으로 키워야 한다며 ‘10만 사회적 기업 창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최 회장의 노력으로 최근 국내외 기업과 학계, 공공 영역 등에서 '사회적 가치'가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다. 이에 사회적 가치를 고민하고 창출하는 데 앞장서 온 기업과 단체, 학계가 공동으로 기획한 '제1회 소셜밸류 커넥트 2019'(Social Value Connect 2019, 이하 SOVAC)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이 행사는 지난 연말 최 회장이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뿐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도록 협력과 교류, 알림의 장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한 것이 단초가 됐다. 최 회장의 아이디어에 관련 기관과 전문가들이 적극 호응해 공동 파트너로 참여하면서 행사가 성사된 것이다.
최 회장이 최근 강조하는 것은 '인센티브'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만큼 사회적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SOVAC 행사에서 그는 "사회적 가치에서 성과를 내려면 많은 이가 참여해야 하는데 문제는 '현실' "이라며 "이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 만든 것이 사회성과 인센티브 제도로 사회적 가치 창출에 얼마나 많이 기여했는지 측정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주는 사회를 만들자는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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