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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문희상, 와세다대 초청 강연 "문재인-아베 선언 기대"

기사등록 : 2019-11-0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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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신뢰·창의적 해법으로 미래지향적 관계 복원"

[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G20 의회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순방중인 문희상 국회의장은 5일 와세다대학교 초청 방문 강연에서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인 문재인-아베 선언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문 의장은 이 자리에서 "한일 양국은 숙명적인 친구이자 동반자이며 파트너"임을 강조하며 현재 경색돼 있는 한일 관계를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며 한일 관계 회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 의장은 이어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한일 양국의 과거·현재·미래 꿰뚫은 두 지도자의 놀라운 통찰력과 혜안의 결과"라며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자신은 일본에 각별하고 깊은 애정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피해 할머니의 마음 속 응어리를 풀어주는 것"이라며 "반세기를 이어온 한일 양국 의회의 교류를 통해 해법을 모색할 때"임을 강조했다.

문 의장은 그러면서 "새로운 제도를 마련 입법적 노력은 의회의 책무"라며 "강제징용 피해자 등과 관련 한국 국회가 선제적으로 입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일본을 공식 방문 중인 문희상 국회의장은 5일 오후 도쿄의 와세다대학교에서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문재인-아베 선언을 기대합니다 : 진정한 신뢰, 창의적 해법으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복원"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진행했다. 2019.11.06 kimsh@newspim.com

다음은 문희상 국회의장의 와세다대 초청 강연 전문이다.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국회의장 문희상입니다.

존경하는 와세다 대학교 학생 여러분, 교수님과 교직원 여러분,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많은 관심을 갖고 참석해주신 모든 청중 여러분께 반가움의 인사를 전합니다. 오늘 세계적인 명문 와세다 대학교에서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특별강연의 기회를 만들어 준 와세다 대학교 국제화해학 연구소 아사노 토요미 소장님과 고려대학교 평화와 민주주의연구소 박홍규 소장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G 20 국회의장 회의를 계기로 일본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대되었던 일정이었습니다.

와세다 대학 학생 여러분!

이곳 와세다 대학은 일본의 명문 교육기관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훌륭한 인재를 배출한 곳입니다. 오부치 게이조, 모리 요시로 총리님을 비롯해 전후 7명의 내각총리대신을 배출하였습니다.

수많은 졸업생들이 일본 사회의 각 분야에서 최고의 리더로 성장했습니다. 와세다 대학 출신인 무라카미 하루키 선생은 한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일본의 작가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이곳 와세다 대학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1943년 와세다 대학에 입학해 야구팀 주장을 했던 김영조 선수가 바로 나의 장인어른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오신 뒤에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코치와 감독을 역임하셨고 야구교본도 집필할 정도로 뼛속까지 야구인이셨습니다.

오래전 젊은 나이에 작고하셨지만, 생전에는 당연히 모교의 교가를 즐겨 부르셨다고 합니다. 나의 아내가 몇몇 소절을 기억해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진취의 정신, 학문의 독립, 영원한 이상, 빛나는 우리의 발걸음"이라는 가사들에서 와세다 대학의 당당한 학풍과 기상을 느끼게 됩니다. 오래 전 장인어른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오늘 여러분과의 만남이 더욱 뜻깊고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 한일 양국, 숙명적인 친구이자 동반자이며 파트너

학생 여러분!

일본에게 한국은, 한국에게 일본은 어떤 의미입니까. 지정학적으로는 가장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입니다. 역사적으로는 1,500년 이상의 길고도 깊은 교류가 이어지는 관계입니다. 문화적으로 같은 어순을 사용하는 우랄 알타이 계통의 언어를 쓰고 있으며, 불교와 유교의 문화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일 양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가치를 선도해왔습니다. 특히 안보에 있어서도 한미동맹, 미일동맹, 한미일 공조의 한축으로서 긴밀히 협조해 왔습니다. 한일 양국은 상호간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중요한 파트너이자 동반자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배경 속에서 양국 국민의 상호 교류는 그 얼마나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한해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 국민이 8백만 명이고,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 국민도 3백만 명에 달합니다. 양국 국민의 인적 교류는 타국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인간관계의 연장이 곧 국제관계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일본 양국은 서로 이사 갈 수 없는, 가장 가깝고 오랜 이웃이자 친구인 동시에 파트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숙명입니다.

□ 한일관계, 이대로 방치하는 건 무책임한 일

와세다 대학 학생 여러분!

안타깝게도 최근 한일관계에 커다란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이번 일본 방문을 앞두고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간혹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도 양국간 교류와 협력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발전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양국관계는 출구를 찾지 못하는 미로에 갇힌 것 같습니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고 했습니다. 외교관계에 있어서 신뢰는 관계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신뢰의 위기입니다.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아사히 신문도 '한일관계를 이대로 방치하는 건 미래에 대한 무책임'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크게 공감하며 한국의 정치인으로서 무거운 책임감도 느낍니다.

나는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며 두 가지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하나는 1963년 멀리 유럽의 독일과 프랑스입니다. 또 하나는 바로 20여 년 전 두 손을 맞잡은 한일 양국의 두 지도자입니다.

□ 독일·프랑스 화해, 지도자의 미래지향적 리더십이 큰 작용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의 전쟁을 겪으며 수 백 년간 앙숙관계에 있던 독일과 프랑스는 1963년 1월 엘리제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조약에는 상호간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협력의 새 시대를 연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외교와 국방, 교육과 문화 등 전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며, 이를 위해 국가지도자와 고위 관료들이 정기적인 대화의 틀을 만드는데 합의했습니다.

우리가 독일과 프랑스의 사례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 핵심에 독일의 과거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죄와 프랑스의 화해와 용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맺어진 양국의 화해협력은 유럽연합을 탄생시키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특히 샤를 드 골 프랑스 대통령과 콘라드 아데나워 독일 총리가 맺었던 엘리제 조약의 정신은 이후에도 미테랑 대통령과 헬무트 콜 총리로 이어지며 더욱 빛을 낼 수 있었습니다.

양국 정치지도자들의 미래지향적인 리더십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입니다. 지금 유럽연합의 리딩스테이트(leading state)로서 굳건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 두 나라의 위상은 한일 양국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 김대중-오부치 선언, 한일 양국의 과거·현재·미래 꿰뚫은 두 지도자의 놀라운 통찰력과 혜안

여러분, 또 하나의 장면은 여러분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998년 10월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일본의 오부치 총리가 이루어낸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선언'입니다. 한일관계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합니다. 이 선언을 구상한 김대중 대통령은 앞서 얘기한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늘 이 선언이 성사되는데 오부치 총리가 가장 큰 공로자였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또한 오부치 총리가 일본의 역대 총리가 주저하고 꺼려하던 한국에 대한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통절한 반성과 사죄의 뜻'을 표시하는 용기와 결단을 보여주었고, 이는 참으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나는 두 지도자 사이에 형성된 신뢰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탄생시킨 배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어린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낸 선언이기에 후속조치도 신속했습니다.

인적 물적 교류협력 촉진은 물론이며, 국방 관계자들의 교류와 정보 교환을 통한 안보 협력 강화, 대북정책에 관한 긴밀한 정책 공조, 경제 협력 강화, 일본 대중문화의 한국 시장 진출 개방, 일본 입국비자 간소화, 과거사 공동 연구와 같은 공식 또는 비공식적 교류의 확대 등이 총망라되었습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 이후 한일관계의 패러다임은 근본적인 전환점을 맞이하였으며,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확신합니다.

여러분,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꿰뚫고 있는 정신입니다.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를 지향하자', 과거를 직시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고, 미래를 지향하는 것은 인식된 사실에서 교훈을 찾고 보다 나은 미래를 함께 열어가자는 것입니다.

한일 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은 두 지도자의 놀라운 통찰력과 혜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과거에 발목을 잡혀 미래로 못 나가면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미래를 핑계로 과거를 덮으려 한다면 더욱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대중 대통령과 문희상, 일본에 각별하고 깊은 애정 있어

존경하는 여러분!

한일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김대중 대통령에게 일본은 특별한 나라였습니다. 46년 전, 이곳 도쿄에서 납치되어 죽음의 고비를 넘겼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6년의 감옥 생활과 10년 이상의 가택연금, 다섯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독재정권의 온갖 탄압과 모진 고문을 참아내며 기어이 대한민국에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습니다. 전 세계가 그 공로를 인정해 노벨평화상을 수여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늘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자 긴 세월 동안 애써 준 일본의 국민과 언론, 정부의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일본이 한국의 민주주의 쟁취와 IMF 시기 경제위기를 벗어나는데 큰 지원을 해준데 대해 항상 감사해하셨습니다.

여러분, 나는 대한민국 국회의장을 맡고 있는 지금까지 40여 년의 정치인생을 걸어왔습니다. 그 정치인생에 있어서 김대중 대통령은 내가 갖고 있는 정치신념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의 정치적 스승이자 아버지셨습니다. 나 역시 일본과 일본 국민에 대해 각별하고 깊은 애정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나는 청년시절부터 JC 활동을 통해 일본의 동년배들과 깊은 교류가 있었습니다. 정치를 시작한 후에도 그 누구보다 일본에 우호적으로 활동했던 지일파로 활동했습니다. 양국 의원들의 최대 조직인 한일의원연맹의 한국측 회장도 다년간 역임하며 일본측 의원들과 다양하고 깊은 교류를 했습니다. 그만큼 일본에 대한 이해도도 충분하다고 자부합니다.

지난 2월 본의 아니게 어느 외신의 보도로 일본 분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미 일본의 정치인들과 의회지도부에 미안하다는 뜻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일본 언론에도 보도 되었습니다. 오늘 일본의 미래인 대학생 여러분 앞에서도, 다시 한 번 나의 발언으로 인해 일본 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면 미안하다는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 한일 총리 회담, 얽힌 실타래의 한쪽 실 끝 찾은 것

존경하는 여러분!

지난 10월 24일 일본의 아베 총리와 한국의 이낙연 국무총리가 만났습니다. 이낙연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아베 총리에게 전했습니다. 레이와시대의 개막을 축하하고 양국관계의 발전을 희망하며, 태풍피해를 당한 일본국민을 위로하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태풍피해와 관련해서는 나 역시 참의원, 중의원 두 분 의장님께 위로 서신을 보낸 바 있습니다.

이번 총리회담에서 양국 총리 모두 한일 양국은 중요한 이웃국가이며 한일관계의 이런 어려운 상태를 계속 방치할 수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북핵문제와 관련해 한일과 한미일 공조가 중요함을 공유했습니다. 특히 당국뿐만 아니라 청소년과 민간교류를 통한 의사소통을 계속해 나가자는데 인식을 같이했습니다. 매우 의미있는 회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로 어제 태국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만남을 가졌습니다. 한일 현안에 대해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고 양국 정상간에 공감대를 이룬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일관계를 풀어갈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던 얽힌 실타래의 한쪽 실 끝을 찾았다는 표현으로 기대를 표하고자 합니다.

□ 한국 정부와 의회, 국가 간 약속 어기지 않았고 존중

지금의 한일갈등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양국간 입장 차이에서 촉발되었습니다. 이후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한국의 GSOMIA 종료 선언 등의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이어졌습니다.

일본은 우리 정부가 국가간 약속 지키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부인하거나 파기를 선언한 바가 있지 않고, 이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다만, 한국 대법원은 불법적 식민지배에 의한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배상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습니다. 즉 정부간 약속과는 별개로 개인의 청구권까지 포기시킬 수는 없다는 해석입니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을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존중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 정부도 그동안 '샌프란시스코협정'에 대해 외교보호권을 포기하는 것이지 개인 청구권의 포기가 아니라는 점을 밝혀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본질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 마음속 응어리 풀어주는 것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정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의 파기를 선언한 적도 없고 재협상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피해 당사자들이 전혀 동의하지 않는 합의는 시작부터 현실적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의 본질은 피해 당사자들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것입니다.

특히 돌아가실 때까지 남아있을 마음속 응어리와 한을 풀어드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올해 초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자 故김복동 할머니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돈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100억이 아니라 1000억을 줘도 역사를 바꿀 수가 없다"고 절규하셨습니다. 그분이 원했던 것은 '진정성 있는 사과' 한마디였습니다.

여러분,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께서는 "한일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과 인간의 이해이며, 일본인과 한국인이 서로에 대해 진심으로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하며,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를 강조한 말입니다.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징용 피해자의 문제는 일본과 한국이 공유하며 추구해온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의 문제입니다. 양국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 피해자들의 응어리를 풀어주기를 기대합니다.

□ 반세기 이어온 양국 의회교류 통해 해법 모색할 때

존경하는 여러분!

앞서 말씀드린 현안에 대한 한일 양국 정부의 입장은 서로 견고합니다. 때문에 타협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이대로 계속 방치한다면 양국 국민에게 큰 상처와 피해를 주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한일 갈등이 이전의 어려움과는 다르게 가장 위태롭게 보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양국 정부 간 관계에 그치지 않고 국민대중의 감정에까지 파고드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 심각성이 위험수준입니다. 신속하게 해법을 마련해야 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합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한국과 일본 양국 의회와 정치인들이 창의적인 역할을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회의 역할은 양국 정부 간 할 수 있는 일은 적극 지원하고, 정부 간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에 대한 창의적인 해법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후 한일의회의 교류는 1972년 시작된 한일국회의원 간담회를 시작으로 반세기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일 갈등을 해결하는 비공식 외교라인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나 역시 한일관계의 해법을 양국 의회가 모색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공식· 비공식 일정을 통해 일본의 정치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한일 갈등을 조속히 타결해야 한다는데 모두가 뜻을 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 '새로운 제도' 마련 입법적 노력은 의회의 책무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 정부는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고 하고, 일본 기업은 위자료 지급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전체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실질적인 손해배상을 받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한국의 대법원 판결에 따른 강제 집행 시한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이나 국회는 현행법상 사법부의 판결에 따른 강제집행을 중단하거나 연기시킬 권한이 없습니다. 그동안 양국 정부 간에 오간 제안들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일 관계는 나란히 달리는 열차의 형국입니다.

이제 한일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는 입법적 노력은 의회지도자들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한국의 입법적 해법을 내놓으려고 합니다.

한국 국회에는 이미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는 법안들이 여러 건 제출되어 있기도 합니다. 나는 이러한 법안들을 분석하고 종합하여 단일안으로 제안하려고 합니다.

□ 강제징용 피해자 등과 관련 한국 국회가 선제적 입법하겠다

제안하는 법안은 한국 국민의 피해와 아픔을 한국이 선제적으로 품어야 한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하겠습니다. 과거에 우리 국민이 겪었던 고통을 국가가 나서 치유하며 나가야 할 때가 되었고, 대한민국의 국력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침 올해는 상해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법안이 구체적으로 담아야 할 내용은 첫째, 강제징용 피해자와 위안부 피해자 문제 등 한일 사이의 갈등을 근원적이고 포괄적으로 해소하는 내용이어야 합니다.

둘째,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이미 집행력이 생긴 피해자들과 향후 예상되는 동일한 내용의 판결에서 승소한 피해자들에게 '위자료'가 지급된다면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이 '대위변제'된 것으로 간주되고, 배상을 받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민사소송법에 따른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오랜 논란이 종결되는 근거를 담아야 하겠습니다.

셋째,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위하여 한일청구권 협정 등과 관련된 모든 피해자들의 배상문제를 일정한 시한을 정해 일괄적으로 해결하는 규정을 담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당연히 이와 관련한 심의위원회를 두어야 하겠습니다.

재원마련에 대해서는 "기금"을 조성하되, 양국의 책임 있는 기업이 배상하자는 1+1 방식을, 원점에서 재검토 하는 방향이 바람직합니다. 기금의 재원은 첫째 양국 기업의 기부금으로 하되, 책임 있는 기업뿐만 아니라 그 외 기업까지 포함하여 자발적으로 하는 기부금 형식입니다.

둘째, 양국 국민의 민간성금 형식을 더하겠습니다. 셋째, 현재 남아있는 '화해와 치유 재단'의 잔액 60억 원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기금을 운용하는 재단에 대해 한국정부가 출연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피해 당사국인 한국의 선제적 입법을 통해 한일 양국이 갈등현안에 대해 포괄적으로 협의하고 양보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고, 화해협력의 물꼬를 틀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당장 이러한 법안 제안에 대해 양국 정부는 입장을 내놓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결국, 국민의 대의기관인 양국의회가 긴밀하게 협의하며 세심하게 논의하고 추진해야 할 사안입니다. 일본 측의 적극적인 화답과 동참도 기대합니다.

물론 양국 국민의 눈높이에 못 미쳐 모두에게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제안하고 말해야 합니다. 이 또한 나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양국 국민의 전향적인 이해와 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도쿄올림픽 성공기원, 한중일 2년 단위 개최 의미 커

존경하는 여러분!

북핵문제와 관련한 동북아의 국제정세가 녹록치 않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2년 동안 남북 간에 네 차례의 정상회담이 있었습니다. 북미 간에는 두 차례, 북중 간에는 다섯 차례, 북러 간에는 한차례 등 동북아 역내 국가들 간의 정상회의가 빈번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최근 이러한 탑다운 방식의 외교가 일상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가장 유사입장국(like-minded country)인 한국과 일본이 정상급 회담을 거의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일 양국은 외교안보 차원에서 상호간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특히 동북아의 안정과 번영·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일본이 견지하는 비핵·평화 원칙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2020년 도쿄 올림픽이 1년도 남지 않았습니다. 사상 유례없이 아시아의 한·중·일이 2년 단위로 연이어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안정은 물론 세계 평화를 주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도 도쿄 올림픽이 반드시 성공하기를 기원하며, 한일 양국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문재인-아베 선언을 희망

여러분, 외교는 가능성의 예술이고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역구는 부산입니다. 아베 총리의 지역구는 시모노세키입니다. 현재도 두 지역을 오가는 연락선이 있는데, 이 배 위에서 이루어지는 한일정상회담을 상상해봅시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버금가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을 것입니다.

그 정상회담을 통해 첫째, 1965년 국교정상화를 매듭지었던 한일청구권 협정과 1998년 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의 정신을 재확인하고, 둘째,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한국 배제와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조치를 원상복구하며 셋째, 양국의 현안문제(강제징용 피해자 문제 등)를 입법을 통해 근원적으로 해결한다는 대타결이 이뤄지기를 기대해봅니다.

한일 정상이 빠른 시일 안에 만나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능가하는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문재인-아베 선언'이 이뤄지기를 희망합니다.

□ 조화와 존중의 마음으로 공생공영의 새 시대로 나아가자

와세다 대학 학생 여러분!

지난 9월 열렸던 야구 세계청소년선수권 대회 한일전의 한 장면이 세계인에게 작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9회 말 일본 투수가 던진 볼이 한국 선수의 머리 쪽으로 날아와 헬멧에 맞았습니다. 자칫 감정이 폭발할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어린 두 선수는 모자를 벗고 서로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고 답례를 했습니다.

세계야구소프트연맹은 '존중(Respect)'이라는 제목을 달아 동영상을 게재했습니다. 한일 양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또한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보여준 이상화 선수와 고다이라 선수의 우정은 양국 국민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기성세대, 특히 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국의 미래는 밝다'라는 희망적인 생각도 가져봅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레이와 시대 개막을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상서롭고 평화로운 조화'라는 뜻이 마음에 크게 와 닿습니다. 인간관계, 공동체, 국가, 국제관계 속에서 조화라는 말처럼 중요한 말이 또 있을까 합니다.

여러분, 한일 양국이 조화와 존중의 마음으로 공생공영의 새로운 시대를 향해 함께 나아가길 기대합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일본을 공식 방문 중인 문희상 국회의장은 5일 오후 도쿄의 와세다대학교에서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문재인-아베 선언을 기대합니다 : 진정한 신뢰, 창의적 해법으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복원"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진행했다. 2019.11.06 kimsh@newspim.com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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