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문재인 정부가 11월 9일로 임기 5년의 반환점에 섰습니다. "잘못된 관행과의 과감한 결별"이란 취임사로 시작한 '문재인의 2년 6개월'은 소득주도성장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두 축으로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경제와 남북문제 모두 답답한 흐름인 것도 현실입니다. 종종 피로감도 엿보입니다. 과연 후반 레이스는 어떨지 종합뉴스통신 뉴스핌이 문재인 정부의 나머지 절반을 짚어봅니다.
[서울=뉴스핌] 조재완 기자 = 문재인 정부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집권 여당 더불어민주당 안팎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가 마무리되며 당내 쇄신론이 잇따라 분출되고 있다. 그간 억눌려있던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모양새다.
특히 조국 국면을 거치며 기득권층의 표상이 된 386세대(현 586세대, 50대·1980학번·1960년대생)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조국은 떠났지만 '386 조국 사태' 책임론이 대두되면서다. 세대교체에 준하는 쇄신이 없으면 차기 총선을 어렵게 치를 것이라는 위기감도 깔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 이인영 원내대표(왼쪽)가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9.11.04 kilroy023@newspim.com |
◆ '文정부 개국공신' 386, 조국 사태 거치며 '물갈이 대상'으로…"80년대 이념틀 갇혀"
현 정권의 주축인 386세대는 20년 전 정치권에 대거 등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새천년민주당을 창당, 세대교체론을 내세우며 영입한 '젊은 피' 인재들이었다. 386 운동권 대표주자인 이인영·우상호 의원과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당시 영입됐다.
이후 20년 가까이 진보 진영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386세대는 2017년 탄핵정국 속 압도적인 '촛불 지지'에 힘입어 문재인 정권을 열었다. 현재 이인영·우상호 의원을 비롯해 당내 3선 이상 386 인사는 15명. 초·재선을 합치면 절반 가까이 된다. 이들은 어쩌다 문 정부 임기 절반도 채우기 전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됐을까.
지난 8월 조 전 장관 임명 이후 한국 사회는 두 달 가까이 이른바 '조국 블랙홀'에 빠졌다. 친문과 반문으로 쪼개진 진영 대결에 국론은 사실상 양분됐고, 세대갈등은 봉합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조 전 장관 임명 과정에서 불거진 자녀 특혜 의혹 등 공정성 문제는 한때 개혁과 정의를 외쳤던 386세대의 이중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정치권 386세대 대표주자였던 조 전 장관과 '조국 감싸기'로 일관한 동세대 정치권 민낯을 목격한 대중의 분노는 상당했다. '386 조국'은 떠났지만 후폭풍은 386 집권세력으로 옮겨갔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운동권 이데올로기란 무기를 지닌 386세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지적인 세대다. 그러나 후배 세대와의 소통에 실패하면서 그들이 만든 이데올로기를 전수하지 못했고 스스로 변화하고 깨어나오지 못했다"며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들이 여전히 1980년대 사고체계에 갇혔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기존 기득권에 저항하고 투쟁한 세대였지만 이들도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 '꼰대'가 됐다. 트렌드는 곧 대중공감코드인데, 이 코드는 변하기 마련이다. 이들 역시 변화에 실패한 것"이라면서 "결국 또 하나의 기득권으로 여겨지며 저변확대에 실패한 집권여당"이라고 평가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386세대가 문 정부를 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나, 이들은 아직도 80년대 극단적 이념에만 빠져 2년 반 동안 국가운영에 실패했다. 경제와 외교·안보는 무너지고 소득 양극화는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스핌] 이한결 기자 = 지난 10월 12일 저녁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일대에서 열린 '제9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촛불, LED전구 등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10.12 alwaysame@newspim.com |
◆ 돌아오지 않는 2030…"이제 비워주자" 386 자성론 확산
조국 정국을 거치며 정부 지지율은 바닥을 쳤다. 정권 초 70~80%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연일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정부 지지도는 3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민주당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조국 정국을 거치며 지지율은 30%대 중반까지 주저앉았다. 자유한국당이 바짝 추격해오면서 양당 지지율 격차는 현 정부 들어 최소치로 좁혀졌다. 일간 집계로 지지도가 역전됐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조 전 장관은 물러났지만 떠난 지지층은 돌아오지 않았다. 11월 1주차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38.2%. 한국당과 4.3%p 격차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당장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회복하기 힘든 수준의 내상을 입었다. 가뜩이나 20대 청년층 마음을 돌리려 고군분투하던 중이었다. 조국 사태로 촉발된 해묵은 진영싸움과 불공정 논란은 중도층 이탈로 이어졌고, 결국 쇄신론이 터져나왔다.
가장 먼저 신호탄을 쏘아올린 건 이철희 민주당 의원. 이 의원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전략 전략기획위원장을 지내고 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맡은 선거 전략통이다. 이 의원은 조국 정국이 마무리되는 듯 하자 기다렸다는 듯 불출마 선언을 했다. 정치 회의론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했다. 386 출신 이 의원은 동세대 중진들을 향해 '이제 그만 자리를 비워주자'고 했다.
"386이 국회 들어온 지 얼추 20년 됐다. 그 정도면 한 세대를 보더라도 어지간히 했다. 도매급으로 무조건 물러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존 자리를 비켜줘야 새로운 분이 들어올 수 있다. 민주화운동 할 때 그 열정과 책임감이라면 충분히 양보할 수 있다. 지금은 386이 비워주는 역할을 할 때다. (11월 5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표창원 의원도 차기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 영엽인재 1호'인 표창원 의원도 86세대다. 그도 조국 사태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표창원 의원과 이철희 의원은 조국 대전 당시 '법사위 최전선'에서 야권 공세로부터 조 전 장관을 사수했다.
그는 불출마 선언 후 기자들과 만나 "공정과 정의를 주장하고 상대의 불의를 공격하던 우리가 '내로남불'로 비춰지는 게 가슴 아팠다. 젊은 세대가 느꼈을 실망감에 특히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2019.11.04 kilroy023@newspim.com |
◆ '청년 영입·내부 쇄신' 與, 부랴부랴 반성문 썼지만…"국민 눈높이 맞춰야"
"국민, 특히 청년들이 느꼈을 불공정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좌절감은 깊이 있게 헤아리지 못했다. 여당 대표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국민 여러분께 매우 송구하다."
당은 뒤늦게 반성문을 썼다. 조 전 장관 임명으로 사태가 벌어진 지 85일 만이었다. 이해찬 대표가 직접 사과에 나섰고, 당은 정부·청와대 공동 책임론을 내밀며 몸을 바짝 낮췄다. 그러나 분위기 반전이 쉽지 않다.
당은 일단 청년·여성인재 영입 등 내부 쇄신을 단행해 386 논란을 딛겠다는 복안이다. 최근 청년과 여성이 포진한 총선기획단을 띄우며 후배 세대와의 소통을 거듭 강조하며 그 의지는 드러냈다. 하지만 국민 기대치에 부합하는 수준의 적극적인 쇄신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영일 평론가는 "제1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성과 청년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곤 있으나 아직 부족하고 약하다. 더 적극적으로 풀어헤치고 포용하면서 자신을 버리는 면을 더 보여야 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야당과 상대평가로 우열을 가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대중의 평균 눈높이를 보고 절대평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며 "민주당이 지표로 삼아야 할 것은 내부 쇄신론이 아니라 국민 눈높이의 쇄신 요구"라고 꼬집었다.
박상병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교수는 "차기 총선 승리를 위해선 대대적인 물갈이가 이뤄져야 한다"며 "조국 사태 당시 침묵했던 386세대와 수도권 다선 중진들을 중심으로 한 인적쇄신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친문 인사들 역시 이를 모르지 않는다. 당이 중도층 인사를 대거 발탁하고 친문계가 물러나야 한다. 중도를 통한 과반정당을 목표로 해 임기 후반기 국정운영 동력을 확보할 것"으로 봤다.
반면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투쟁성이 있어 공천에서 배제하긴 힘들 것으로 본다"며 "이들의 구체적 성과물이 빈약할 수는 있지만 386 전체를 뭉뚱그려서 모조리 갈아야 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86세대가 이념 지형성에서 벗어나 실용적 측면의 시야를 가져야한다"고 조언했다.
문 정부가 임기 후반 정체된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통합 행보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영일 평론가는 "문 정부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행정부를 지표로 삼아야 한다. 오바마 정부는 임기 중반 인기가 떨어지며 30~40%대 지지율을 보였지만 60%대 지지율로 임기를 마쳤다"며 "임기 초 '적폐청산'을 내걸고 얻은 80%대 지지율까지 끌어올릴 순 없겠지만 대북·대미 문제, 무엇보다 경제 성과가 뒷받침해준다면, 문 정부가 50% 이상의 지지율로 국민들의 박수 속에 임기를 마무리 할 가능성은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그러면서 "노무현 정부 집권 3년 차에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하는 대통합 메세지가 나왔다. 궁여지책이었지만 발상의 전환"이라고 평가하며 "문 정부도 전반기보다 통합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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