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뉴욕증시의 장기 강세장에 핵심 동력을 제공한 자사주 매입을 이용해 기업 내부자들은 보유한 지분을 팔아치운 것으로 나타나 주목된다.
가뜩이나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기업들이 설비 투자와 고용보다 자사주 매입에 자금을 투입하는 데 비판이 고조, 민주당 대선 후보들 사이에서 과세 움직임이 나오는 상황과 맞물려 논란을 일으킬 전망이다.
달러화 [출처=로이터 뉴스핌] |
7일(현지시각) 워싱턴 포스트(WP)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2018년 사이 15개월간 최소 500명의 뉴욕증시 상장 기업 내부자들이 자사주 매입을 이용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매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가운데 기업 최고경영자(CEO)도 50명 이상 포함됐다. 비판이 일자 해당 내부자들은 주가 조작을 포함한 부당한 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 경영진들이 자사 주식을 매도하는 데는 차익 실현 이외에 개인적인 사정을 포함해 다양한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자사주 매입이 일반적으로 주가 상승 모멘텀을 제공할 뿐 아니라 소위 개미 투자자들의 '사자'를 부추긴다는 점에서 월가는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캔디 크러시와 콜 오브 듀티 등 히트작을 앞세운 모바일 게임업체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2017년 2월 기업 성장성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며 10억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했다.
투자자들은 적극적인 주식 매입으로 화답했지만 기업 내부자들은 주가 상승을 틈타 보유 중이던 지분을 내다 팔았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CE)에 따르면 자사주 매입 발표 이튿날인 2017년 2월10일 회사 CEO인 보비 코틱이 약 400만주의 주식을 1억8080만달러에 처분, 매입 가격보다 평균 15%에 달하는 차익을 손에 넣었다.
이어 같은 달 17일에는 5명의 회사 고위 경영진이 총 4억3000만달러 규모로 지분을 매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액티비전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WP는 주장했다. 어도비와 일렉트릭 아트, 홈디포와 TJX, 옐프 등 최고경영자들이 자사주 매입 발표 후 주식을 매도한 기업이 비일비재하다는 얘기다.
감독 당국에서는 내부자들의 주식 매도 행각을 시장 조작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SEC의 로버트 잭슨 조사관은 WP와 인터뷰에서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은 주가를 쥐락펴락할 만큼 대규모로 이뤄지고 있다"며 "투자자들에게 자사주를 매입한다고 발표하고 경영진이 팔 궁리를 한다면 조작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SEC가 2017~2018년에 걸쳐 조사한 결과 기업 내부자들의 주식 매도가 자사주 매입 발표 직후 5 배 가량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현행 증권법상 이를 규제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실정이다.
이어 SEC의 조사에서는 내부자들이 대규모 물량을 털어낸 기업의 중장기 주가 상승률은 평균치를 밑돌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자사주 매입을 발표만 할 뿐 해당 기간에 실제 주식을 단 한 주도 매입하지 않은 기업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한편 지난 10년간 미국 S&P500 기업이 자사주 매입에 투입한 자금은 5조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입 규모는 지난해에만 55% 급증, 8060억달러에 달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세금 인하에 따른 혜택이 중장기 성장을 위한 투자보다 주식시장을 살찌웠다는 지적이다.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