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지현 기자 = "죽기를 각오하고 무기한 단식 투쟁을 시작하겠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오후부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대국민 호소문을 읽으며 단식을 시작했다. 호소문을 읽는 황 대표는 '목숨을 걸겠다', '소아의 마지막 자취까지 버리겠다'며 비장함을 표했다.
황 대표는 단식에 들어가면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파기 철회 ▲공수처법 포기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철회 등을 요구했다. 세 가지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단식 투쟁을 무기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당초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단식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경호상의 이유로 천막 설치가 어려워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단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대국민호소문 발표를 마치고 단식 농성을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2019.11.20 leehs@newspim.com |
◆ 갑작스러운 단식 발표…"오래 전부터 결심한 듯"
단식은 이날 오전 급작스럽게 발표됐다. 이른 아침에 진행된 당대표 및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중진 의원들도 황 대표의 단식 소식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그만큼 당 내에서 황교안 대표와 의원들 간 교감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황 대표의 내적 고민은 오랫 동안 이어져온 듯 했다.
황 대표 한 측근은 "지난 월요일에 만났는데, 조만간 뭔가 중대한 일이 있는 것처럼 얘기를 하더라"며 "뭔가 큰 일이 발표될 것 같기는 했는데, 그것이 단식일지는 몰랐다"고 전했다.
그는 "오늘 아침 발표를 보고서야 알았다"며 "원내에서 단식에 대한 아이디어를 조언 받기보다는 외부 조언자가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투쟁 방식의 일환으로 단식을 고민하고 있던 황 대표가 지난주 이미 결심을 한 뒤 이날 발표를 했다는 것이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대국민호소문 발표를 마치고 단식 농성을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2019.11.20 leehs@newspim.com |
◆ 보름 앞으로 다가온 패스트트랙 본회의 부의…막을 방법이 없다
황 대표가 단식에 들어간 가장 큰 이유는 '패스트트랙 법안' 황 대표가 직접 밝혔듯 패스트트랙 법안을 막기 위해서다.
당장 오는 27일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선거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부의되는 날이다. 한 주 뒤인 12월 3일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 등을 포함한 검찰 개혁 법안이 본회의에 부의된다.
이미 패스트트랙에 태워진 법안을 한국당이 막을 방법은 없다. 특히 상임위와 법사위 차원의 논의를 모두 마치고 본회의에 부의된 상황이라면 국회의장이 본회의를 열어 상정만 하면 표결까지는 속전속결이다.
특히 최근 여야 4당이 다시 선거법 개정안 등에 있어 공조를 강화하는 모양새가 갖춰지면서 한국당은 더욱 고립됐다.
그렇다고 지난 4월 패스트트랙 국면처럼 물리적 충돌을 다시 야기할 수는 없다. 이미 당 소속 의원들이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망에 오른 상황에서 또 다른 물리적 충돌은 황 대표로서도 부담이기 떄문이다.
황 대표로서도 투쟁 방법에 대해 수많은 고민을 거듭해왔다. 당초 한국당은 오는 23일 광화문에서 장외집회 개최를 검토했었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박찬주 전 육군대장 영입 논란 이후 인재영입이나 보수 통합 관련해 일이 제대로 진행된 것이 없다"며 "위기 국면에서 자주 장외집회를 해왔던 터여서 광화문에서 전국적인 집회를 계획했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장외집회에 당 내부적으로 큰 피로감이 쌓였다는 데 있었다.
한국당 한 의원은 "한동안 매주 장외집회를 하다 보니 멀리서 오는 당원들은 그 피로감도 상당하다"며 "이제 날씨도 추워지는데 추가적인 장외집회는 솔직히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장외집회에 대한 당 내부 여론도 이전만큼 긍정적이지 않은데다 당 재정 상황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다른 투쟁이 필요했다. 강력하면서도 국면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투쟁, 단식 투쟁이었다.
[서울=뉴스핌]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후 여야 5당 정당대표(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을 청와대 관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2019.11.10 photo@newspim.com |
◆ '죽을 각오'로 하는 단식 투쟁, 정국 변화 가져올 수 있을까
'죽을 각오'로 하는 단식 투쟁을 통해 황 대표는 패스트트랙 법안을 막을 수 있을까. 일단 국회에서 한국당이 완전히 배제된 채 법안이 통과되는 최악의 상황에는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한국당 의원은 "황 대표의 치밀한 성격상 무기한 농성이라고 언급한 이상, 쓰러질 때까지 할 것이 분명하다"면서 "적어도 보름 정도는 버티지 않을까 싶다"고 언급했다.
어떤 정치 행보를 하든 신중하게 결정하는 황 대표의 성향상 쉽게 단식을 결정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어떻게든 소기의 성과가 있을 때까지 단식을 지속할 것이라는 관측이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보름 후는 검찰개혁 패스트트랙 법안이 본회의에 부의되는 날 즈음이다.
검찰개혁안이 본회의에 올라가는 순간까지 황 대표가 극한 상황에서 단식을 계속한다면 여야 4당이 한국당을 완전히 배제한 채 법안을 상정해 표결에 부치기는 쉽지 않다. 한국당은 이를 통해 패스트트랙 법안에 있어 협상의 여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의 단식을 통해 청와대와의 대화 국면이 열릴지도 주목되는 점이다.
앞선 한국당 의원은 "황 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단식에 나서겠다고 했던 데에는 제1야당 대표를 이렇게까지 무시하는 청와대에 대한 답답함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번 청와대 5당 대표 만찬 때도 제1야당 대표를 예우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고, 최근 영수회담 제안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단칼에 거절하지 않았냐"며 "얼마나 청와대와 말이 안통하면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청와대 앞에서 투쟁을 하겠다고 나서겠냐"고 덧붙였다.
다만 일각에서는 황 대표의 단식 투쟁이 실질적인 국면 전환을 가져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황 대표의 갑작스런 단식 발표에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황 대표의 단식은 떼쓰기, 국회 보이콧, 웰빙 단식 등만 경험한 정치 초보의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20대 국회 들어 성공적이었던 단식투쟁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전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했던 단식, 드루킹 특검을 촉구했던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단식 정도다.
이들의 단식 투쟁은 단일 요구사항으로 협상의 여지가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황교안 대표의 투쟁은 지소미아 연장과 패스트트랙 철회 등으로 범위가 넓다. 특히 지소미아 연장은 외교적 문제가 얽혀있어 단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최도자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은 "황 대표의 단식은 명분도 당위성도 없다"며 "문재인 정부의 국정 난맥이나 지소미아 연장이 황 대표 한 명의 단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도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황 대표가 제1야당의 품격을 되찾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회복하는데 노력해주길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jh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