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지현 기자 = "저는 싸워봤고 싸울 줄 아는 사람입니다. 투쟁하되, 내주는 것은 줄이고 최대한 많이 얻어내는 이기는 협상을 하겠습니다."
지난 9일 원내대표 경선에 나선 심재철 당시 원내대표 후보의 일성이었다. 하지만 이 다짐은 하루만에 난항을 겪었다.
이기는 협상을 하겠다고 다짐한 것과 달리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과 일부 야당은 4+1협의체에서 만든 예산안 수정안을 결국 의결했다.
한국당은 속수무책으로 30분도 안돼 통과된 예산안 앞에서 피켓을 들고 소리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19.12.11 kilroy023@newspim.com |
◆ "전투력 있는 중진에 기대 걸었건만"…'필리버스터 철회' 공감대 못얻어 난항
통상 원내대표가 새로 뽑히면 '허니문 기간'을 갖게 마련이다. 한달여 정도는 당무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취임과 동시에 실전이었다.
한국당 의원들이 심 원내대표에 많은 표를 몰아준 것도 '5선'이라는 정치적 무게감에 따른 협상력과 정치력을 기대해서였다.
심 원내대표는 실제 당선된 직후 30분만에 문희상 국회의장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를 만나러 갔다. 예산안과 패스트트랙 법안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회동에서 심 원내대표는 재협상과 동시에 패스트트랙 법안을 정기국회 내에 상정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왔다. 하지만 대가는 있었다. 한국당이 신청했던 '필리버스터 철회'였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필리버스터 철회를 추인받기 위해 원내대표 취임 직후 첫 의원총회를 열었지만 당 내 반발이 거셌다. "크게 받아온 것도 없이 철회부터 약속해왔다"는데 대한 불만이었다.
한 한국당 관계자는 "꽉 막힌 정국을 풀기 위해 심 원내대표가 필리버스터 철회라는 카드를 과감하게 던졌다"면서도 "하지만 워낙 사안이 민감하다 보니 의원들 입장에서는 사전 언질이나 동의 없이 덜컥 철회라는 약속을 해온 것을 용인해줄 수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심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를 철회하겠다는 다른 당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했고, 당 내에서도 공감대를 얻지 못하면서 입장이 난처해졌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1회 제12차 본회의에서 2020년도 예산안에 대한 수정안을 가결 시키는 가운데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항의를 하고 있다. 2019.12.10 leehs@newspim.com |
◆ 전임 나경원도 의원들 반대로 리더십에 타격
전임 나경원 원내대표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었다. 지난 6월 장기간 파행을 거듭하던 국회가 정상화를 약속하면서 만든 합의문 때문이었다.
당시 나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법안은 각 당의 안을 종합해 논의한 뒤 합의정신에 따라 처리한다 △추경 심사에 돌입한다 △경제 원탁 토론회를 개최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합의문을 만들어왔다. 당시 나 원내대표는 합의문에 서명까지 한 상태였다.
하지만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패스트트랙 법안을 '합의정신에 따라 처리한다'는 문구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대부분이었다. 또 의원들 동의도 받지 않은 채 나 원내대표가 서명부터 해왔다는 점이 지적됐다.
결국 서명까지 한 합의문은 2시간만에 백지화됐었다. 당시 나 원내대표는 당 내에서는 '불신임'논란에 휩쌓였고, 당 밖에서도 협상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지난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1회 제12차 본회의에서 2020년도 예산안에 대한 수정안이 상정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날치기'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항의를 하고 있다. 2019.12.10 leehs@newspim.com |
◆ "준비한 절차 있다" 했지만 30분만에 예산안 통과…'2차 대전' 패스트트랙 저지 고심
심재철 원내대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벌써부터 당 안에서는 신임 원내대표에 대한 회의감 섞인 목소리도 감지된다.
전투력 있는 원내대표와 전략가 정책위의장으로 구성된 원내지도부에 기대를 걸었지만, 첫 관문부터 무기력했다는 지적이다.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지난 10일 여야 정당들과의 예산안 합의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자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에게 "나름대로 우리 당에서 준비한 절차가 있다"고 자신했었다.
하지만 본회의가 시작되고 예산안은 30분도 되지 않아 통과됐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임기 시작과 동시에 시험대에 오른 새 원내지도부에게는 두 번째 관문인 '패스트트랙'이 남아있다. 법안 통과를 막을 실질적인 방법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한국당이 어떻게 선방하느냐가 관건이다.
패스트트랙 법안 강행 저지 방안을 찾기 위해 열린 11일 의원 총회에서는 예산안때와는 다른 방식의 투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성태 전 원내대표는 "야당의 무기는 협상이다. 투쟁도 결국 협상을 위한 도구이지, 투쟁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투쟁만 하다가는 어제처럼 숫자에 밀린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의원들도 "협상을 하지 않으면 어제처럼 또 당할 수 있다"며 "의원들 사이에서 협상의 문을 열어놔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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