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대법원 내부 자료를 무단 반출하고 청와대에 '비선 의료진' 사건 자료를 넘긴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유해용(53·사법연수원 19기)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현 변호사)이 "검찰이 언론에 피의사실을 흘려 비난이 쏟아졌다"며 "충격을 받아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박남천 부장판사)는 16일 오전부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유 전 연구관에 대한 결심공판을 진행했다. 검찰은 유 전 연구관에 징역 1년6월을 구형했다.
유 전 연구관은 2015년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으로 알려진 김영재·박채윤 부부의 의료용 실 특허소송 자료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통해 사안요약 문건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날 검찰이 피고인 신문에서 유 전 연구관에게 '검찰 조사 당시 사안요약 문건에 대해서는 관여 사실을 인정하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말하자 "기억이 안 나는데 언론보도를 통해 문건이 청와대에 전달된 게 기정사실화된 상태에서 추측성 질문을 자꾸 되물으니 실제와 다른 답변을 했다"고 답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유해용 전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이 12일 오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등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출석하여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18.09.12 kilroy023@newspim.com |
검찰은 지난해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당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USB에서 비선 의료진 특허소송 요약 문건 등 유 전 연구관의 이름이 붙어있는 파일을 확보했다. 이후 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유 전 연구관이 법원을 퇴직하며 대법원 내부 자료를 무단반출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미 검찰이 확보한 문건 1건에 대해서만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1차 압수수색 당시 유 전 연구관으로부터 '다른 자료를 인멸하지 않겠다'는 확약서를 받았으나 이후 문건이 파쇄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이와 관련해 유 전 연구관은 "사실 판사로서 25년을 살았던 사람이 자기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청구됐다는 게 언론보도 됐다는 그 자체만으로 느끼는 충격이 너무 컸다"며 "검사님이 어느 순간 어떤 일로 조사 대상이 되면 그렇게 이성적으로 잘 따져서 행동할 수만은 없다는 걸 알게 되실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검찰이 순리대로 영장을 집행했다면 저도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려 계속 비난 받을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검찰이 막무가내로 가진 자료를 내놓으라고 하고 영장이 기각됐는데도 '언플'해서 비난이 쏟아지게 만드니까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었다"고 검찰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압수수색 이전) 검사와의 비공개 면담 과정에서 임의제출하라는 설득이 있었는데 이는 플리바게닝(혐의인정 조건으로 형량을 낮추거나 비교적 가벼운 범죄로 기소하는 것) 같은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 위법한 수사라고 생각한다"며 "압수수색 당시에도 현장보존 확약서를 써달라고 해서 거부했는데 재차 요구했는데 (문건 파쇄 이후) 이 때문에 온갖 인신공격을 받게 됐다. 이것이야 말로 검찰이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직권남용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서울중앙지검 /김학선 기자 yooksa@ |
유 전 연구관은 검사가 '피고인이 임의제출해주면 처벌하지 않겠다거나 기소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느냐'고 묻자 "직간접적으로 세 번 있다"며 "기소나 처벌까지는 모르겠지만, 검사가 '문제삼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재판부는 검찰 측이 낸 공소장 변경 허가 신청을 받아들였다. 당초 검찰은 공소장이 유 전 연구관이 임 전 차장에게 비선 의료진 관련 문건을 전달하고, 임 전 차장이 곽병훈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에게 전달했다고 적시했으나 '사법부 외 성명불상자에게 전달했다'고 이를 변경했다.
이와 관련해 변호인은 "피고인을 국정농단 및 사법농단 사건과 연결하기 위해 청와대를 대대적으로 동원해놓고는 이제와서 개인적 청탁 사건으로 완전히 바꾸고 있다"며 "증거도 없는 무리한 기소였다는 것을 검찰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자가당착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이날 양측의 최종 의견을 들은 뒤 재판절차를 모두 마무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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