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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헌규특파원의 금일중국 ]마카오 반환 20주년에 돌아보는 홍콩, 아편전쟁이 끌어들인 '트로이의 목마' 홍콩

기사등록 : 2019-12-2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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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뉴스핌 최헌규 특파원]= 중국에게 있어 홍콩은 기구한 운명의 땅이다. 홍콩은 근대의 시작과 더불어 중국에게 있어 굴욕의 낙인이 됐다. 아편전쟁(1840년~1842년)에 패한 중국은 불평등한 난징조약에 따라 홍콩섬과 주룽(九龍)반도를 영국에 빼앗기고 1898년에는 대륙쪽 신계(新界)까지 99년간 영국에 빌려주게된다.

중국은 국운이 쇠퇴한 탓에 서구 제국들에 의해 갈갈이 찢겼고 중국인들은 무기력하고 비굴했고, 상당수 서방국가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당시 서구 열강국가들은 그런 중국을 가리켜 동아병부(東亞病夫,아시아의 병자)라고 손가락질했다.

당시 세계 대제국 영국의 수중에 들어간 홍콩은 중국입장에서는 근대사의 치욕이었지만 100여년 넘는 시간동안 자본주의를 통해 눈부신 성장을 하면서 세계 무역 및 금융 허브로 우뚝 섰다. 세계가 선망하는 자유분방하고 민주적이며 개방적인 사회 체제로 발돋움했다

중국과 전혀 다른 모습이 된 홍콩은 아편전쟁 이후 155년, 신계 조차(租借) 이후 99년만인 1997년 중국의 품, 즉 사회주의 체제로 돌아오게 된다. 반환 협상 초반 중국과 영국 양측은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영국은 당시 아편전쟁의 전리품으로 취한 홍콩섬과 구룡반도는 놔둔 채 99년간 빌린 신계 지역만을 되돌려주려고 했다.

그러나 중국 지도부가 홍콩을 돌려받기위해서라면 무력전쟁도 불사한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 영국은 결국 당시의 홍콩 전체 반환을 결정하게 된다. 영국의 반환 결정에는 또 홍콩섬과 구룡지역을 야만적이고 부정한 전쟁 수단으로 취득했다는 점, 신계가 없으면 홍콩 섬의 유지 자체가 어렵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과 영국의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1982년 홍콩 반환 협정에서 1997년 7월 1일을 반환일로 정하고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한 홍콩의 자본주의 체제를 향후 50년간 보장하기로 합의했다. 이른바 덩샤오핑이 제시한 일국양제(一國兩制)' 해법이 수용되면서 마침내 중국의 숙원인 홍콩 주권반환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155년만의 홍콩 주권반환은 그러나 중국에게 마냥 축복만은 아닌 것 같다. 150여년전 홍콩 할양이 중국 굴욕의 징표였다면 향후 사회주의 중국의 자본주의 홍콩 체제 통합은 그 자체로서 엄청난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매우 까다롭고도 위험한 여정이 아닐 수 없다.

오는 2047년 자치(특별 행정자치구) 보장 50년의 과도 시한이 끝나면 자본주의 홍콩은 사회주의 중국으로 완전히 넘어가게 된다. 일국양제 약속시한이 28년으로 아직 절반 넘게 남은 이 시점에서 중국은 올해들어 유난히 홍콩의 중국화를 서둘렀다. 올해 홍콩시위 사태는 중국 공산당의 이런 조급증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중국의 대 홍콩정책이 계속 이런 방향으로 간다면 앞으로 홍콩은 더 빠른 속도로 쇠퇴할 수 도 있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특파원=중국은 2019년 12월 20일 시진핑 총서기가 참석한 가운데 마카오 반환 20주년을 성대히 기념했다. 중국은 반환 20주년을 맞아 마카오가 홍콩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중국 공산당의 태도에 달려있다는 지적이다. [사진=바이두] 2019.12.20 chk@newspim.com



홍콩인들은 그동안 영어와 광둥어를 공용어로 사용해 왔지만 중국 당국은 학교에서 중국 표준말인 보통화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본토처럼 국기계양식을 하고 방송에서는 국가인 인민해방군 행진곡을 내보내고 있다. 이런 조치들은 모두 홍콩주민에 대한 중국의 국가의식과 정체성 고취의 일환이다.

여기에다 중국 정부가 최근들어 선거 및 사법 제도 문제 등 보다 민감한 분야에까지 깊숙이 개입하고 나서면서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지난 2014년에는 홍콩 행정장관을 중국이 지정하는 인사중에서 뽑도록 하는 법안을 내놓자 군중들이 노란 우산을 들고 저항하면서 이른바 '노란 우산혁명'이 일어났다.

올해들어선 중국정부가 홍콩 범죄인 인도 관련 송환법 개정을 추진하고 나서면서 홍콩에 어느 때보다 격렬한 시위가 발생했다. 중국은 건국 70주년이란 큰 국가행사를 앞둔 시점임을 고려해 송환법 개정을 철회하면서 일단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비췄다. 하지만 홍콩 주민들은 행정장관 직선제 보장 등을 요구하며 민주화 시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홍콩 사회를 보면 젊은 세대일수록 반대륙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다. "나는 홍콩 사람이지 중국인이 아니다". 그들은 스스럼없이 이렇게 말한다. 특히 1970년이후 세대들은 중국인이라기 보다는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하다. 철저히 영국식 교육을 받은 이들은 서구적 가치관과 민주적 생활방식이 몸에 배어있다.

1960년대만 해도 홍콩은 반(反) 영국 폭동이 일어날 정도로 강한 '중국 정체성을 보였지만 젊은 세대사이에서는 정 반대의 속성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홍콩의 이런 젊은 세대들이 경제 사회 각분야 주도 세력으로 떠오르면서 자본주의 체제인 홍콩과 사회주의 중국 체제의 융합은 갈수록 더 어려워 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위대한 중화 부흥'을 꿈꾸는 중국 공산당에 있어 오늘의 홍콩은 분명 매우 부담스런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국운이 쇠퇴한 중국은 어쩌면 100여 년전 아편전쟁에 패배하면서 훗날 두고 두고 화근이 될 '트로이의 목마'를 끌어들인 것인지도 모른다.

트로이의 목마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형상을 한채 오랜 시간에 걸쳐 홍콩을 중국공산당이 상대하기 힘든 '괴물'로 바꿔놨다. 부지불식간에 2047년으로 설정된 일국양제의 종료 시한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중국은 2019년 12월 20일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겸 국가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마카오 반환 2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했다. 시주석 마카오 방문 3일 내내 중국의 신문 방송들은 정부를 대신해 마카오의 지속적인 번영을 약속했다. 하지만 홍콩이든 마카오든 일국양제 시한이 됐을 때 지금처럼 계속 민주 사회로 번영을 누릴지, 사회주의 중국에 완전 흡수될지, 아니면 둘다 아닌 제 3의 체제로 바뀔지, 자못 궁금증이 더해진다.

베이징=최헌규 특파원  chk@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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