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연초 중동 지역에서 불거진 전운이 전세계 금융시장을 긴장시키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 일촉즉발의 무력 충돌 움직임을 보이자 미중 1단계 무역 합의에 안도하고 있던 투자자들이 다시 경계 태세다.
월가 트레이더들 [사진=로이터 뉴스핌] |
금값과 유가가 동반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시장 전문가들은 당분간 안전자산 상승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진정되지 않을 경우 신흥국을 중심으로 금융시장을 강타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제 펀더멘털까지 해칠 수 있다는 경고다.
3일(현지시각) 이란의 군부 실세인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정예부대 사령관이 미국의 공습에 의해 사망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직접 지시했다는 소식이 금융시장을 흔들어 놓았다.
브렌트유가 장중 4% 이상 랠리했고,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역시 3% 이상 급등했다. 금 선물도 1% 이상 치솟으며 불안한 투자 심리를 반영했다.
독일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장 후반 6bp(1bp=0.01%포인트) 하락하며 마이너스 0.28%에 거래됐고, 같은 만기의 미 국채 수익률도 5bp 내리며 1.82%까지 밀렸다. 주요국 증시는 일제히 하락 압박을 받았다.
시장 전문가들은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한편 일단 전운이 고조된 데 따른 충격이 위험자산 가격을 끌어내리는 한편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부추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픽텟 애셋 매니지먼트의 루카 하올리니 전략가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그동안 최고치 랠리 속에 지정학적 리스크가 외면 당했을 뿐 해소됐던 것이 아니다"라며 "최근 상황은 투자자들이 고점에서 안주할 때 작은 악재에도 시장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유가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턴어라운드를 시도하는 지구촌 경제 펀더멘털에 타격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런던 소재 크레디트 아그리콜의 발렌틴 마리노프 외환 헤드는 투자 보고서에서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합의에 따른 글로벌 경제의 회복 기대에 커다란 흠집을 냈다"고 설명했다.
주리엔 티머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 글로벌 매크로 책임자는 "뉴욕증시의 12개월 예상 실적 기준밸류에이션이 18.5에 이른다"며 "같은 악재가 불거졌을 때 밸류에이션이 15일 때와는 충격의 규모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스위스 소재 콜롬보 웰스의 알베르토 토치오 최고투자책임자는 "이란의 대대적인 보복과 이를 계기로 무력 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금융시장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며 "투자자들은 이를 지난해 급등한 주식과 채권 등 주요 자산에 대해 차익을 실현하는 빌미로 동원할 여지가 높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유가 이외에 외환시장의 급등락을 예고하고 있다. 스위스 프랑화와 엔화 등 안전자산이 당분간 상승 흐름을 타는 한편 유가와 상관관계가 높은 상품 통화 역시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반면 한국 원화를 포함해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 통화는 미국과 이란의 대치 국면 속에 하락 압박에 시달릴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과민한 반응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블랙록의 웨이 리 신흥국 상장지수펀드(ETF) 전략가는 "불과 24시간 사이 자산시장의 판도가 뒤집어진 모습"이라며 "이 같은 변동성은 예기치 못했던 일이 아니며, 중동 사태가 실제 경제 성장률에 미치는 충격이 확인될 때까지 성급한 움직임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주가 하락이 비중 확대 기회가 될 수 있고, 일부 투자자들은 이 같은 전략을 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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