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선엽 기자 = 이탄희 전 판사가 19일 인재영입 10호로 더불어민주당에 합류했다.
이 전 판사는 2005년 사법연수원 34기 졸업 후 2008년 3월 판사로 임용됐고 2017년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코스인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받았다.
그러나 법관들을 뒷조사한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법원 내 인권연구 단체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계획' 문서들의 존재를 알게 되자 사직서를 제출하며 사법농단에 저항했다.
사직서는 반려되었지만 이 사건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으로 이어지며 사법개혁의 도화선이 됐다.
이 전 판사는 이날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인재영입 기자회견에서 "'평범한 정의'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인재영입 10호 이탄희 전 판사가 19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입당 기자회견에 앞서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악수를 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김선엽 기자 = 2020.01.19 sunup@newspim.com |
다음은 이 전 판사의 입당 기자회견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이탄희입니다.
저는 오늘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현실정치에 참여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이 시점에서의 정치참여에 대해서 주변 많은 분들의 조언을 들었습니다. 주신 말씀들 모두 음미하면서 깊이 고민한 뒤, 결정을 내렸습니다. '평생 정치에 투신하겠다'라는 결단인 것처럼 과장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난 1년 간 재야에서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한계를 느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제도권에 다시 참여할 필요가 있다'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결정했고, 일단 결정한 이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의 과업은 명확합니다. '나와 내 가족, 우리 이웃사람들, 이 평범한 우리 대부분을 위한 사법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에서 가장 억울하게 몰리는 그 순간에 믿고 판단을 맡길 수 있는 공정한 사법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수많은 개인적, 사회적 문제들을 결국 법원이 결정짓는 '사법과잉의 시대'를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는 OECD 회원국 꼴찌 수준입니다.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회복 없이는 경제정의도, 공직사회개혁도 이룰 수 없고 청년문제도, 빈곤문제도 악화되는 것을 막기 어렵습니다.
사법신뢰회복을 위해 당장 두가지가 필요합니다. '비위법관탄핵', '개방적 사법개혁기구 설치'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강조해온 부분입니다. 탄핵을 통해 사법농단의 과거를 확실히 매듭지어야 합니다. 또 재판 받는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사법개혁기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40년도 더 된, 폐쇄적이고 제왕적인 대법원장체제를 투명하게 바꿔나가는 사법개혁의 대장정을 시작해야 합니다.
정치에 참여하면서 사법개혁만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판사, 헌법연구관, 공익변호사,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정치를 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를 국민께 약속드립니다.
1. '평범한 정의'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평범한 우리 대부분을 위한 정의가 중요합니다. 조직을 위한 정의, 권력을 위한 정의, 기득권을 위한 정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의는 그 누구도 독점할 수 없습니다. 전관변호사를 살 수 없는 사람들, 검찰조직에 큰 의미가 없는 사건들에도 남들과 동등하게 공정한 수사, 투명한 재판, 납득할 만한 결과가 주어져야 합니다. 정의가 평범해질 때까지, '평범한 정의'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2. '과업에 집중하는 정치'를 하겠습니다.
정치도 일이고 국회의원도 공무원입니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입니다. 국민의 이익이 우리 사회의 '공적 가치'입니다. 그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 공무원의 과업입니다. 조직논리에 빠진 판검사들이 국민을 배신한 것처럼 개인의 상승논리에 빠진 정치인도 좋지 않습니다. 오직 과업에만 집중하겠습니다.
3. '내일을 위한 제도'를 설계하겠습니다.
정치적인 사건과 개개인에 대한 품평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래서 세상이 더 나아지고 있는가?', '그래서 법원과 검찰이 바뀌고 있는가?', '그래서 평범한 우리 대부분에게 뭐가 좋아지는가?'라고 스스로 항상 묻겠습니다. 큰 흐름을 보겠습니다. 큰 그림을 그리고, 제도를 설계하고, 이를 구현해 나가겠습니다.
정치참여를 결정하기까지 몇가지 과정이 있었습니다. 작년 가을, 몇몇 초선의원님들이 희망을 계속 이어나가는 일에 동참하자고 제의해주셨습니다. 고사했습니다. 국회 안보다 밖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겨울이 되어 다시 제의를 받았습니다. 고사했습니다. 억측과 모함이 두려웠습니다. 올해 또다시 제의를 받고 고민했습니다. 저 스스로 1년 내내 국회가 중요하다고 해놓고 정작 자신은 피하기만 하는 제 모습이 비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겨우 익숙해진 공익변호사 활동을 1년 만에 중단하는 것이 많이 아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서 사법개혁을 민주당의 핵심과제로 삼아주시겠느냐'라는 저의 요청에 대해 흔쾌히 응락하시는 당 지도부의 모습에 마음이 더 움직였고, 사법농단 1호 재판에서 무죄판결이 나는 상황을 보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법복을 입고 마지막 재판을 진행한 때가 2017년 5월입니다. 햇수로 3년이 지나는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사법농단 저항의 구심점이라는 제 책임을 다했고, 두 번째 사표를 냈고, 법정 밖의 넓은 세상을 배웠고, 새로운 동료들을 얻었고, 다시 사법개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배운 것이 있습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을 함께 원하고,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피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혼자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변화는 구심점과 지지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1/300을 바꾸고, 국민이 그걸 아껴주시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함부로 취급되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의 변화는 그렇게 시작되리라 믿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애정, 따끔한 질책,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