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연순 기자 =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직권남용죄의 성립 요건인 '의무 없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엄격하게 해석하면서 이번 국정농단 사건 뿐 아니라 사법농단,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상고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일부 무죄 취지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기일에 참석하고 있다. 이 날 대법원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의 상고심 선고를 내린다. 2020.01.30 pangbin@newspim.com |
특히 전원합의체는 국정농단, 사법농단 등 적폐수사가 시작되면서 여러 사건에 두루 적용됐던 직권남용죄에 대해 적용범위 등 기준을 제시했다.
형법 제123조에 규정된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 성립한다.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그동안 직권남용 범죄와 관련한 법원의 해석은 하급심마다 엇갈렸다. 직권의 범위, 의무없는 일의 정의, 남용의 개념 등 조항의 해석을 둘러싸고 다양한 견해가 있어왔다.
대법원은 이날 김 전 실장 등의 지원배제 지시는 '직권을 남용'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봤지만, 그동안 판단 기준이 모호했던 '의무 없는 일'에 대한 기준을 엄격하게 제시했다.
대법원은 "직권남용 행위의 상대방이 공무원이거나 공공기관 임직원인 경우에는 법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그가 어떠한 일을 한 것이 의무 없는 일인지 여부는 관계 법령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동시에 "행정기관의 의사결정과 집행은 서로 간 협조를 거쳐 이뤄지는 게 통상적"이라며 "이러한 관계에서 일방이 상대방의 요청을 청취하고 협조하는 등의 행위를 법령상 의무 없는 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만 성립하는데, '의무 없는 일'의 범위를 지나치게 폭넓게 봐서는 안 된다는 게 전원합의체 판결의 취지다.
이에 따라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된 국정농단, 사법농단 등 굵직한 사건에도 이번 대법원 판결의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직권남용죄 형이 줄어들거나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현재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조국 전 장관의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사건 등 직권남용죄가 적용된 십여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에 따른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조 전 장관은 2017년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유 전 부시장의 중대 비위를 확인하고도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감찰을 무마시킨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상태다. 아울러 검찰은 전날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한편 앞서 대법원은 직권남용죄로 1·2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은 안태근 전 검사장의 사건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검사 인사에 관한 직무집행을 보좌하는 실무 담당자는 일정한 권한과 역할이 부여돼 업무 재량을 가진다"면서도 "안 전 검사장이 서지현 검사를 수원지검 여주지청에서 창원지검 통영지청으로 발령한 조치가 검사 전보인사의 원칙과 기준을 위반하거나, 직권남용죄에서 규정하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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