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 베이징 = 최헌규 특파원] "저는 2003년 사스 직전인 2월 베이징에 와서 사업을 준비중이었어요. 한달도 안돼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터지면서 직격탄을 맞았죠. 최근들어서는 작년부터 베이징 시청(西城)구 신제커우(新街口)에 직영 매장 개설을 준비해왔습니다. 1월 20일 전후로 '코로나19(신종코로나)'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사스의 악몽이 떠오르더군요. 그냥 밀어붙였고 일단 2월 10일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
12일 베이징 차오양구 왕징에 위치한 소호 빌딩의 카라카라(KALAKALA) 사무실. 코로나19로 아직 출근이 정화되지 않은 때문인지 사무실에는 평소와 달리 직원들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기자가 왜 직원들이 이렇게 없냐고 인사를 건네자 이춘우 사장은 마스크를 쓴 얼굴로 기자를 쳐다보며 "대부분 직원들이 현재 재택 근무중이거나 현장에 나가 있다. 2월 하순쯤 업무가 정상화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다'
넘어질줄 모르는 오뚜기 비즈맨
중국 전역에 중가 화장품 시장 입지를 굳혀가고 있는 카라카라 이춘우 사장은 중국 시장에 관한한 산전수전 다 겪은 배테랑 사업가다. 대한민국 최고의 직장을 박차고 나와 중국사업을 시작하자 마자 사스를 맞았고, 천신만고 끝에 사업을 일으켰지만 재차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어려움을 겪었다. 위기의 터널에서 빛이 보인다 했는데 이번에 다시 17년 전과 비슷한 코로나 19 사태를 맞은 것이다.
하도 큰일을 많이 겪다보니 멧집이 세진 걸까. 이 사장이 신종 코로나에 대처하는 방식은 좀 남다르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것.
일단 설 연휴를 쉬고는 신규 매장 개설을 계획대로 밀어붙였고 당국의 설 연휴 연장 권고를 지킨 뒤 2월 10일부터 새 매장을 정식 오픈했다. 이 사장은 "마무리 인테리어 작업중이던 2월 초 어느날엔 시청구 관내 관리들이 찾아와서 고생한다며 격려까지 해주고 가더라"고 말했다.
다들 선망하는 삼성 비서실 재무팀을 마다하고...
삼성그룹 공채 출신인 이춘우 카라카라 사장은 그룹내 중국 지역 전문가 과정 1기로 중국시장과 인연을 맺었다. 한중 수교의 해인 1992년 홍콩과 베이징에서 두루 중국을 배우고 경험했다. 그는 중국 연수를 마치고 돌아가자 마자 다음해인 1993년 제일제당(CJ) 중국 사무소 개설 책임자로 중국 사업 실무에 뛰어든다.
이춘우 사장은 제일제당의 초창기 사업을 정착시키는데 수훈을 발휘했고 삼성 그룹내에서도 몇째 안가는 중국 전문가로서 인정을 받았다. 그는 2000년대 초 삼성내에서도 승진 출세의 보증수표라고 하는 비서실 재무팀으로 발령을 받았다. 주변엔선 모두가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는 놀랍게도 바로 다음달 조용히 사직서를 책상위에 올려놓고 중국으로 떠난다.
"유통사업을 하면서 중국에서 꿈을 펼쳐보고 싶었거든요. 당시는 중국이 WTO에 가입하고 경제가 폭발 성장할 때였습니다. 기회가 날라다니는게 눈에 보일 정도였어요.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죠." 그런데 잘나가던 중국경제에 누구도 예측못한 재난이 일어났다. 사스가 발생한 것이다.
[뉴스핌 베이징 = 최헌규 특파원] 베이징 시청구 신제커우에 있는 카라카라 화장품 매장 모습. 2020.02.13 chk@newspim.com |
<사스와 더불어 시작한 중국 비즈니스 >
이 사장은 2003년 2월 20일 베이징에 와서 짐을 풀고 아파트와 차를 사고, 사무실을 얻고 직원을 뽑았다. 어느정도 세팅이 됐다 싶었다. 근데 이게 왜 날벼락인가. 스타트선을 막 박차고 나가려고 할때 누구도 예상못한 사스라는 날벼락이 닥친 것이다.
"당시엔 정말 하늘이 노랬어요. 솔직히 태평로 삼성그룹 재무팀의 안정된 책상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리기도 했고 많이 속상했죠.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
이 사장은 사스 영향이 지속된 5개 월여의 시간을 그냥 공백으로 비워두지 않았다. 그 기간중 이 사장은 시장 조사를 겸해 중국 소비자들의 특성과 사스 이후의 중국 유통 시장 변화를 열심히 연구했다.
다들 사스 공포에 짖눌려 있을때 이 사장은 좌절하지 않고 뚝심으로 사스 이후를 준비했다. 낙담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면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카라카라는 더 경쟁력있는 회사가 됐다.
"강 한 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당시 이말의 의미를 이 사장은 온 몸으로 실감했다. 결국 사스 이후에는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이 사장은 카라카라를 180개 매장의 중견 화장품 유통 업체로 키워냈다. <下편에 이어짐>
베이징= 최헌규 특파원 ch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