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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지구촌 돋보기 ] ⑤소득불균형과 양극화의 심화

기사등록 : 2020-02-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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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2020년 시작부터 미국과 이란이 무력으로 충돌하면서 전쟁공포가 피어오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국가이기주의로 인한 혼돈이 만연하고 있다. 국제사회에 관용과 협조가 실종되고 평화와 공존번영이란 이념도 찾아보기 힘들다. 자유무역 질서가 손상되면서 무역분쟁이 일상화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조화로운 시장질서에 기반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구촌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머리를 맞대 인류의 희망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국제사회의 말기적 현상을 짚어본다.

1990년대 초를 기점으로 공산주의가 붕괴하자 자본이 세계를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그러나 경쟁과 시장원리에 기반을 둔 신자유주의는 양극화와 사회부조리 현상을 심화시켰다. 그 결과 중산층이 무너지고 서민 삶은 더욱 피폐해져갔다. 아울러 사회갈등이 심화되고 사회에 대한 불만을 폭력으로 표출하는 양상까지 나타나며 체제의 안정마저 위협하게 됐다.

이러한 현상에 분노한 미국 시민단체와 서민들은 2008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기치를 내걸고 봉기했다. 그들은 대기업과 금융자본의 탐욕, 사회부조리 시정을 위해 가진 자들이 솔선수범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오늘날 우리 경제사회는 '20대 80'의 사회를 넘어 '1대 99'의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고 한다. '20대 80'의 사회에서는 그래도 하위그룹이 희망을 가질 수가 있다. 언제라도 상위 그룹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나마 중산층이라는 게 있어 상위층과 하위 그룹 양 계층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조절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1대 99'의 사회에서 하위 그룹이 상위 그룹으로 진입할 가능성과 계층 상호간 갈등 조정을 담당할 중산층은 없다.

크레디트스위스 은행의 2014년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인구가 소유한 글로벌 자산 총액은 263조 달러에 달하며, 전 세계 최상위 부유층 1%가 이 중 절반에 가까운 48%를 소유한다. 또 소득분배를 연구하는 단체 '세계 부와 소득 데이터베이스'가 발표한 '세계 불평등 보고서(World Inequality Report 2018)'에서는 빈부격차는 갈수록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상위 1%, 약 7600만명의 부유층이 1980~2016년 사이 늘어난 부의 27%를 차지했다. 그중에서도 상위 0.1%인 760만명이 13%, 상위 0.001%인 7만6000명이 4%를 차지했다. 이는 부자들 사이에도 '부익부' 현상이 심화된 것을 보여준다. 반면 하위 50%와 중간층에게 돌아간 부의 성장률은 0에 가까울 정도로 미미했다. 이에 따라 상위1%와 하위 50%간 소득격차는 1980년의 27배에서 81배로 크게 벌어졌다.

이처럼 불평등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소수의 상위계층에 소득이 집중되는 일은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 더 심했다. 2016년 기준 유럽의 상위 10%는 국가 전체 소득의 37%를 누리는 반면 중동의 상위 10%는 국가 소득의 61%를 차지하고 있었다. 인도와 브라질 55%,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 54%로 이들의 소득집중도 심각했다. 미국과 캐나다는 47%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편,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전을 계기로 소득불평등과 양극화 현상은 한층 심화될 전망이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인터넷과 정보기술 혁명 당시 이 기술을 제대로 활용한 계층은 소득이 늘어난 반면, 디지털 문맹은 그렇지 못했다. 이를 우리는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현상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제는 로봇 활용도에 따라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로보틱스 디바이드(robotics divide)' 현상이 나타나리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에 따르면 향후 세계는 로봇공학의 발달로 소득계층은 상위 10%와 하위 90%로 양분된다. 로봇의 발전을 주도할 상위 10%는 고임금을 누리지만, 하위 90%는 로봇에 일자리를 빼앗겨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린다. 처음에는 비교적 단순한 직종들에서 로봇에 일자리를 빼앗기겠지만, 시간이 가면서 점차 복잡한 작업들을 기계가 대체하게 된다. 그 때가 되면 인간이 기계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일은 몇 개나 남아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달에 따라 직무 내용이 극적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기계와 협업에 성공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나뉘면서 직종 내 양극화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 또한 인공지능은 일종의 자산이므로 로봇, 인공지능을 보유하거나 능수능란하게 부릴 수 있는 사람과 기업은 높은 자본소득을 거두지만 반대의 경우엔 도태되고 만다. 결국 인공지능의 보급 확대는 일자리 감소뿐만 아니라 계층간 소득격차를 한층 확대할 수 있다.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2030년 전 세계 20억명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불평등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대신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업자로 전락하거나 단순 노동자가 될 거란 이야기다. 이들은 사회 일자리의 대부분을 인공지능에 빼앗기고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 결과 정부가 제공하는 임시방편적인 일자리나 기본소득으로 연명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경쟁을 기본원리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빈부격차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승자독식 현상은 이를 한층 더 부추기고 있다. '승자독식(Winner-Take-All)'이란 원래 전쟁에서 나온 용어로 승자가 모든 전리품을 챙기는 데서 유래했다. 이후 미국 선거제도에 도입돼 선거인단을 승자에게 몰아주는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즉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싹쓸이하는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승자독식'은 이후 소수의 사람이나 기업에 경제적 보상이 집중되는 현상을 표현하는 용어로 확장돼 사용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돈을 버는 능력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돼버린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일등이 차지하는 파이가 너무나 크다. 이제 대중은 최고의 가수, 최고의 운동선수를 원하고 기업은 가장 탁월한 경영자를 선택한다. 적당히 재능 있는 사람들은 설 자리가 없다. 이는 일등만이 살아남는 사회, 즉 현대판 약육강식을 의미한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좀 더 차지하게 되면 사회는 발전한다. 다만, 일등이 노력에 비해 터무니없이 많은 부를 차지하는 사회는 결코 공정하거나 바람직하지 않다. 모두가 일등이 되고자 지나친 경쟁을 할 경우 경제의 발전을 가져오기보다는 오히려 비생산적인 소비와 투자를 유발해 낭비적인 요소가 커지게 된다. 이와 함께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면서 체제의 불안정마저 야기하게 된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저자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위한 근원적 동력은 근면과 성실,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 청교도적 사상이라고 강조했다. 또 자본가든 노동자든 일할 수 있는 신성함에 감사하고, 탐욕을 버리고 근면과 성실함을 더해 자본주의의 가치를 높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막스 베버가 꿈꾸던 자본주의 정신이 점차 퇴조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 돈이 되면 뭐든 불사한다는 이기심과 탐욕이 가득하고, 근면과 성실 대신 요행과 재산의 대물림, 그리고 정부 지원에 기대 살려는 나태함이 거세게 밀어 닥치고 있다. 이러다 정말 자본주의가 위기에 봉착하고 끝내는 몰락하지 않을까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철환 mofelee@hanmail.net

▶이철환은 재정경제부 국고국장과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등을 지냈다.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암호화폐의 경제학', '인공지능과 미래경제', '을의 눈물'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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