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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위계 경험'이 쾌락의 핵심…관전자들도 권력감 나눠"

기사등록 : 2020-03-2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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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권김현영 "n번방, 폭력 자체에 쾌감을 느끼는 수준으로 변화"

[서울=뉴스핌] 이정화 기자 = "성폭력을 저지른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성욕'이라고 변명하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취하려고 하는 권력 욕구가 깔려 있다. n번방 역시 많은 사람 위에 서 있다는 기분, 권력감을 경험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여성학자 권김현영 씨는 25일 뉴스핌과의 통화에서 n번방의 핵심을 '성욕'이 아닌 '위계 경험에 따른 쾌락'으로 봤다. n번방 사건이 일부의 주장과는 달리 단순히 일그러진 성욕에서 출발한 범죄가 아니라는 의미다.

권김 씨는 "n번방 가해자들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외에 악명이든 오명이든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만능감에 취해있었다"며 "또 다른 가해자인 관전자들도 철저하게 계급을 나눠서 더 많은 돈을 쓴 이가 더 많은 영상을 소지하고 있는 방식으로 권력감을 나눠 가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 n번방 사건은 더이상 성(姓)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폭력이 아니면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수준의 문제로 악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이른바 'n번방'을 운영하며 미성년자 성 착취 동영상을 제작·유포한 핵심 운영자 A씨가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0.03.19 pangbin@newspim.com

n번방 사건은 텔레그램에서 발생한 대규모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말한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 씨는 2018년 12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아동성착취물 등을 제작해 텔레그램 박사방을 운영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 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고 있다. 박사방에서는 미성년자 등을 대상으로 성행위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폭력적·가학적 행위가 동반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한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에서 "박사 관련 방송이 나가면 방송국에 한 여성이 가서 뛰어내리든 분신을 하든 할 것"이라며 "어떠한 방식으로든 사고가 일어날 것을 제작진에게 분명하게 인지시켰으며 이는 캡처해 증거로 남기겠다"는 협박조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권김 씨는 이 같은 범죄 행위가 최소 26만에 달하는 '공범자'를 만들어낸 것은 이를 뒷받침하는 광범위한 남성 문화와 함께 이를 매개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경찰이 확인한 피해자 74명 중 미성년자만 16명에 달한다. 그는 "과거에는 성폭력이 대면 관계에서 자신의 힘 또는 권력을 이용해 상대방을 마음대로 하려는 행동이었다면, 이제는 그런 행동을 매개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들이 생겨나면서 누구나 이 행위에 동참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했다.

권김 씨는 26만명의 공범자가 미성년자 등을 상대로 잔혹한 행위들에 간접적으로 동참하는 동안 아무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이유를 한국의 역사적 배경과 인터넷 기반 기술의 발전, 그리고 여성 혐오에 깊이 침윤된 남성문화에서 찾았다.

한국은 가부장제가 강력하게 작동했던 조선 중후기를 지나면서 여성의 지위가 하락했고, 여기에 한국전쟁, 외환위기 등 위기 때마다 여성의 몸을 담보로 한 착취적 성 산업이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커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기술이 결합하면서 성폭력과 성매매가 결합한 형태로 성을 착취하고 이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 지금의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음란사이트 소라넷이 10여년 만에 사라진 것과는 달리 n번방은 1년여 만에 수면 위로 드러난 것, 많은 사람이 이를 향한 분노를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행동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세상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봤다. 그는 "과거에는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문제다'라고 한 적이 없었다"며 "적어도 이 같은 상황에서 '굉장히 문제다'라고 화를 내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는 점에서만큼은 유일하게 희망적인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조씨의 얼굴은 이날 오전 종로경찰서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clea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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