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현석 기자 = 5000억원대 국가 조달 백신 입찰 과정에서 담합을 벌인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의약품 도매업체 대표의 재판에서 담합을 통해 낙찰가를 높여 실질적인 이득을 얻는 것은 제조사라며 10년 넘게 이어져 온 업계 관행이라는 법정 증언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27일 오후 3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W 사 대표 함모(66) 씨의 1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yooksa@newspim.com |
이날 재판에는 피고인의 회사에 입사해 2006년부터 입찰 업무를 담당해 온 영업 담당 이사 이모(47) 씨가 증인으로 나섰다.
이 씨는 "입찰에서 최저가에 낙찰돼도 제조사의 적격심사에 통과하지 못하면 입찰 업체로 선정되지 못한다"며 "처음에 제시되는 기초금액에 100% 근접하지 않으면 (제조사가) 공급확약서를 발급해주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제조사는 매년 기초금액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않아 도매상 입장에서도 불만이 많다"면서도 "10년 넘게 이어져 온 오랜 관행"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민간 부분의 백신에서는 최저가 낙찰 경쟁으로 기초가의 80% 수준에서 낙찰가액이 결정된다"며 "국가 조달에서는 다른 도매업체들이 경쟁에 들어오지 않는 것도 이상하고 제약 업체들과 도매상이 담합해 입찰하는 방식도 의문이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간에도 수급이 정해진 건 똑같다"며 "국가 조달 가격이 높아지면 결국 민간 가격도 높아져 결국 제조사와 도매사의 이익 때문에 담합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 씨는 "국가 백신 사업에서 도매상이 저가로 낙찰받으면 제조사는 일반 사업에서도 연동 가격으로 공급해야 한다"고 인정했다.
다만 "어떤 도매상이든 저가를 써내면 제조사가 손해를 입게 돼 공급확약서를 써주지 않는다"며 "도매상이 얼마를 적어 내는가로 낙찰가가 결정되는 게 아니라 제조사가 원하는 낙찰가를 써내는가, 그게 공급확약서의 본질"이라고 답했다.
이어 "전액을 민간수요로 공급한다고 해도 공급확약서가 있는 구조에서는 가격 자체가 낮아질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렵다"며 "가격을 올려도 마진율은 똑같아 가격이 오르면 오를수록 제조사가 이익인 셈이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 같은 공급확약서 낙찰 제도 자체를 고안해 질병관리본부에 제시한 당사자가 제조사"라고 덧붙였다.
이날 재판에 따르면 국가예방접종사업(NIP)은 지난 2006년까지 백신 수입사들과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후 2007년부터 조달청을 통해 백신 제조사들만 참여하는 지면경쟁(미리 지명된 복수의 사람만으로 제한해 경쟁) 방식의 입찰이 시작돼 2008년까지 진행됐다.
그러다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입찰 담합으로 제조사를 고발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제조사 대신 도매상을 참여시키는 일반경쟁입찰 방식으로 전환됐고 제조사들은 피고인의 회사를 대표 도매업체로 지정했다.
피고인이 운영하는 회사는 매년 백신 입찰에 참여해 2012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낙찰됐다. 그리고 2015년 NIP 사업이 확대되면서 함 씨는 전국 보건소와 1만5000여개의 위탁의료업체에 백신을 공급하게 됐다. 매출 규모만 한해 수백억 원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검찰은 다음 달인 4월 이른바 '들러리 도매업체'로 참여해 제약사들과 함께 입찰 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함 씨를 추가 기소하겠다는 방침이다. 함 씨의 추가 혐의는 공범들과 별도로 분리돼 이날 재판과 병합될 예정이다.
함 씨의 다음 재판은 4월 27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kintakunte8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