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학준 기자 = 8년 동안 모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했던 70대 박노성(가명) 씨는 지난 19일 기자와 만나 "주민들 개인 기사처럼 일했다"고 하소연했다. 주차는 공식적인 업무 외 노동이었지만 당연한 경비원 업무처럼 굳어졌기 때문이다.
박씨가 일했던 아파트단지는 유난히 주차 공간이 부족했다. 밤늦게 귀가하는 주민들은 아파트단지 밖 노상에 차를 주차한 뒤 박씨에게 열쇠를 맡겼다. 좁은 공간에 이중주차를 하기 힘든데다 차를 미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접촉사고가 우려된다는 게 이유였다.
박씨는 다음날 아침 9시 주차 단속이 나오기 전까지 노상에 있는 주민들 차량을 아파트단지 안에 주차해야만 했다. 경비실에는 차키만 40여개가 있었다고 한다. 아예 열쇠를 하나 더 만들어 경비실에 두는 주민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차량을 주차하다 발생할 수 있는 접촉 사고다. 주민들은 열쇠를 맡기면서 '경비원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막상 차량 수리비용이 몇 백 만원 나오면 불만을 가질 수 있어 '갑질' 혹은 부당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싶다' 홈페이지] |
주민들 차량 주차는 공식적인 업무 외 노동이지만 누구 하나 불만을 제기하는 일이 없었다. 불만을 제기하려면 일을 그만둘 마음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주차를 안 하겠다고 말해본 적은 없다"며 "주차도 안 할 거면 경비가 왜 필요하냐면서 바로 해고시킬 게 뻔하다"고 설명했다.
경비원들의 추가 노동은 박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차 외에도 쓰레기 분리수거, 청소 등 아파트와 관련한 온갖 잡일은 모두 경비원들의 몫이다. 그럼에도 경비원들은 해고 두려움에 불만을 제기할 수조차 없다고 한다. 주민들의 폭행 및 폭언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강북구 모 아파트 경비원 고(故) 최희석 씨 경우처럼 주민들의 '갑질'에도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이 경비원들의 숙명이다.
박씨의 경우 특정 주기마다 모든 경비원들이 소집돼 아파트단지 곳곳을 청소했다. 경비원들 사이에서는 "경비원이 아니라 청소부"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고 한다. 일부 아파트단지는 경비원이 분리수거를 해주면 추가 임금을 챙겨주지만 대부분 경비원들은 받지 못한다는 게 박씨 설명이다.
택배 등 물품을 맡아 달라거나 이웃 주민에게 전달해 달라는 사적 요구도 비일비재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고스란히 경비원 책임이다. 박씨는 "주민 물건을 보관해주다 분실해 35만원을 물어준 적이 있다"고 했다.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조차 제대로 쓸 수 없는 경비원들도 있다. 박씨가 일했던 아파트단지는 휴가를 쓰려면 일명 '대타'를 스스로 구해야 한다. 대신 일해주는 경비원에게 지급하는 일당 11만원은 박씨가 직접 입금해야 한다.
박씨는 "택배 보관이나 아파트 마당 청소, 분리수거, 주차 모두 경비원 일은 아니지만 '인지상정' 차원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도 "이를 당연한 경비원 업무로 생각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내 돈을 내놓고서야만 휴가를 써야 하는 상황"이라며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어야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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