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보람 기자 = 해군본부가 해군 홈페이지에 무더기로 게재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사업 반대 취지 게시글을 삭제한 것이 적법한 직무 집행이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4일 해군본부 게시글 작성자인 A씨 등이 제기한 국가배상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 뒤집고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은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에 비춰 해군 홈페이지가 정치적 논쟁의 장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하면 해군 본부의 삭제 조치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위법한 직무집행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같이 판단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앞서 A씨 등은 지난 2011년 6월 9일 해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집단적으로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사업에 반대하는 취지 항의글 100여 건을 집단 게시했다.
A씨 등은 해군본부가 이같은 항의글을 일괄 삭제하자 이에 반발해 해군이 국민의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1인당 위자료 700만원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다.
재판 과정에서는 국가기관이 관리·운영하는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을 정부 정책에 찬송 또는 반대하는 내용인지에 따라 선별적으로 삭제 여부를 결정하는 조치가 허용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이 사건 삭제 조치가 위법한 직무수행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주요 다툼 대상이 됐다.
1심은 해군 측 손을 들어 원고 패소 판결했다. 당시 법원은 "담당 공무원이 원고들의 항의글을 해군 홈페이지 운영규정에서 삭제사유로 정한 '정치적 목적이나 성향이 있는 경우'로 판단한 것"이라며 "삭제한 조치에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 이유를 설명했다.
2심은 그러나 국가가 원고들에게 1인당 위자료 30만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국민들의 정치적 표현 자유를 넓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해군 홈페이지 운영규정에서 삭제사유로 정한 '정치적 목적이나 성향이 있는 경우'란 특정 정파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직접 포함된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며 일부 국가 공무원 과실을 인정한 것이다.
대법은 다시 이같은 원심 판단이 잘못됐다고 봤다. 대법은 "일반적으로 국가기관이 관리·운영하는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에 대해 내용에 따라 삭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표현 자유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배치되므로 허용되지 않는다"면서도 "이번 사건의 경우 위법한 직무집행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삭제조치는 인터넷 공간에서 항의 시위 '결과물'을 삭제한 것일 뿐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 표출 행위 자체를 금지하거나 제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기본권 제한 정도가 크지 않다"며 "해군본부가 이 사건 삭제 조치를 하면서 입장문을 게시하는 등 공개적으로 이뤄진 조치이고 반대 의견 표명을 억압하거나 일반 국민 여론을 호도하려는 시도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또 "공무원 직무집행이 적절·타당한지 여부와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하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라며 "국가배상책임에 관한 일반 법리를 개별사안에 적용하는 것은 좀 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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