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허고운 기자 = "그냥 처음부터 공포감이 딱 오는거죠. 물고문이 예정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의 박종철 열사 영정에 헌화한 후 방안의 욕조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1987년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당한 그 욕조다.
문 대통령과 함께 509호 조사실을 찾은 지선 스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자신이 조사실에서 겪은 일과 심정을 설명했다. 경청하던 문 대통령은 "철저하게 고립감 속에서 여러 가지 무너뜨려 버리는거죠"라고 말했고, 김정숙 여사는 "어휴"라고 한숨을 쉬며 눈시울을 붉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린 제33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을 마친 후 509호 조사실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 청와대] |
권위주의 시대 고문과 인권 탄압의 현장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은 수많은 민주 열사가 고통받던 곳이다. 당시의 참혹함과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잊지 말자는 차원에서 보존 중인 이 건물은 현재 민주인권기념관으로 꾸며지고 있다. 이날 6·10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도 여기서 열렸다.
문 대통령을 대공분실 내부로 안내한 유동우 민주인권기념관 관리소장은 "어떻게 하면 여기에 끌려온 사람들, 연행돼 온 사람들이 완벽한 고립감과 공포감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까 이런 방향으로 설계가 돼 있다"고 설명했다.
대공분실 입구에는 철제 출입문과 방호문 등이 이중으로 설치돼 있었다. 이곳에 끌려온 피해자들은 눈이 가려지고 포박된 채, 탱크가 굴러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열리는 문소리를 들으며 위압감을 느꼈다고 한다.
건물에 진입한 피해자들은 가파른 철제 나선형 계단을 타고 5층 조사실로 끌려간다. 72계단으로 세 바퀴를 돌게 돼 있는 구조로, 눈을 가린 채 이동할 경우 자신이 향하는 방향과 층수를 알지 못해 공포심이 극대화된다.
유 소장은 "눈을 가린 상태로 끌려 올라가는데 떠밀리면 안 되니 앞에서 수사관 한 사람이 옷깃이나, 옷이 없는 경우 머리를 잡고 올라갔다"며 "계단은 2층, 3층, 4층으로는 나가는 통로가 없어 발을 딛는 순간 5층까지 끌려가 바로 조사실로 가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대공분실을 둘러보고 나온 문 대통령은 민갑룡 경찰청장에게 "이 장소를 민주인권을 기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에 민 청장은 "이곳을 경찰의 역사 순례길로 지정해 새로 경찰이 된 모든 사람들이 반성하고 성찰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민 청장은 과거 공권력을 반성한다는 차원에서 이날 6·10민주항쟁 기념식에 현직 경찰청장 최초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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