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뉴스핌] 나은경 기자 = '양자컴퓨터도 풀 수 없는 암호'.
이처럼 '완벽한' 암호기술을 적용한 스마트폰이 지난달 22일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출시됐다. 주인공은 SK텔레콤과 삼성전자, 국내 반도체 설계전문 팹리스인 비트리가 공동 개발한 '갤럭시A퀀텀'. 간편결제 서비스 사용이 일상화된 지금 보안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알맞은 제품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K텔레콤 양자연구소(퀀텀테크랩)가 비트리에 협업을 제안하면서다.
"세계 양자보안 1위 기업 IDQ에 양자난수를 만드는 원천 기술이 있는데 이를 반도체 칩셋 형태로 상용화하고 싶습니다. 칩셋을 함께 개발해 주시겠습니까?"
11일 SK텔레콤에 따르면 지난 2016년 SK텔레콤의 퀀텀 테크랩은 비트리에 이 같은 제안을 했다. 비트리는 지난 2014년 설립해 이미지센서와 같은 반도체 칩셋을 정밀 설계하고 이 솔루션을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에 공급하는 팹리스(Fabless)다. 당시 SK텔레콤은 세상에 없던 양자난수생성(QRNG·Quantum Random Number Generator) 칩셋을 상용화하기 위해 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하지만 양자보안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파트너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비트리는 고민 끝에 SK텔레콤, IDQ와 손잡고 미래 양자기술을 개발하는 데 협력하기로 했다. SK텔레콤과 IDQ가 지난 2018년 한 회사가 된 이후부터는 개발에 더욱 속도가 붙었다.
[서울=뉴스핌] 김지나 기자 = SK텔레콤자회사 IDQ(ID Quantique) 연구진들이 SK텔레콤분당사옥에서 '갤럭시 A 퀀텀' 스마트폰과 양자난수생성(QRNG) 칩셋을 테스트하고 있다. [사진=SK텔레콤] 2020.05.14 abc123@newspim.com |
◆SKT-비트리, QRNG 칩셋 상용화까지 7전8기
SK텔레콤과 비트리는 2018년 IoT·자율주행용 QRNG 칩셋(가로 세로 5.0 x 5.0mm)과 2020년 모바일용 QRNG 칩셋(2.5 x 2.5mm)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QRNG 칩셋은 지난 2016년 USB 형태의 시제품에서 현재의 초소형 칩셋으로 진화했다. 칩셋 안에서 LED 광원부가 빛(양자)를 방출하고, 이 빛을 CMOS 이미지센서가 감지해 디지털 신호로 변환해 난수를 생성한다. 반도체를 설계하는 비트리와 양자 난수 생성 기술을 가진 IDQ가 함께 개발한 세상에 없던 제품이다.
새끼 손톱보다 작은 QRNG 칩셋에는 비트리의 설계 기술과 아이에이네트웍스의 패키징 기술이 응집돼 있다. 고온/저온, 다습, 정전기 등 극한 상황에서도 정상적으로 동작하도록 초기 설계 단계부터 수많은 신뢰성 테스트를 거쳤다.
또 제3자가 칩셋을 물리적으로 해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칩셋 내부에 ▲구동 클럭(속도) 조절 기능 ▲부품별 다른 전압을 공급하는 멀티 전원 ▲전원 감지 및 자동 초기화 기능 ▲칩셋 내부 데이터 접근 차단 기능 등을 구현했다.
◆세계 최초 모바일용 QRNG 칩셋…1mm 혁신과의 싸움
[서울=뉴스핌] 나은경 기자 = 경기 성남 분당구에 위치한 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비트리 사옥에 전시된 QRNG(Quantum Random Number Generator·양자난수생성) 칩셋 이미지 [사진=SKT] 2020.06.11 nanana@newspim.com |
지난 2018년 초 SK텔레콤과 비트리에는 '세계 최초 모바일용 칩셋 상용화'라는 미션이 생겼다. SK텔레콤-삼성전자 양사 경영진이 CES에서 QRNG 칩셋을 스마트폰에 탑재하는 데 뜻을 모았기 때문.
당시 비트리는 2016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5.0 x 5.0 x 1.1mm (가로 x 세로 x 높이) 크기의 IoT/자율주행용 QRNG 칩셋을 막 상용화했는데, 훨씬 더 작은 크기의 모바일용 칩셋을 개발해야만 했다.
이후 비트리는 SK텔레콤(IDQ), 삼성전자 품질팀과 지속 논의하며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높은 품질기준을 통과하기 위해 칩셋 설계 및 테스트를 거듭했다.
특히 스마트폰 내 탑재를 위해 칩셋 크기를 매번 1mm 단위로 줄이는데 각고의 노력이 들어갔다. QRNG 칩셋에는 LED 광원, CMOS 이미지센서, 전력 어답터 등 수많은 정밀 부품이 들어가는데, 사이즈를 줄일 때마다 필연적으로 모든 부품의 설계를 모두 변경하고 새로 만들어야 했다.
비트리는 설계를 변경할 때마다 반도체 웨이퍼(Wafer)를 생산하는 DB하이텍과 최종 패키징을 담당하는 아이에이네트웍스에 다시 설계도를 전달하고 또다른 시제품을 만들어 테스트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완전한 무작위성(Randomness)을 가진 순수 난수를 생성하기 위한 테스트도 6개월간 약 100만번 진행했다. 순수 난수를 만들기 위해선 LED 광원부에서 방출되는 빛이 CMOS 이미지센서의 각 픽셀에 골고루 잘 도달해야 하는데, LED 광원부의 빛 방출 세기와 CMOS 이미지센서의 픽셀 각도를 100만번 조절해 최적의 조건 값을 찾는 과정이다. 쉽게 표현하면, 분무기로 A4 종이 위에 물을 뿌릴 때 물방울이 종이 전면 곳곳에 골고루 뿌려지도록 환경을 설정하는 것과 같다.
결국 비트리는 약 2년만에 기존 칩셋 사이즈를 대폭 줄인 2.5 x 2.5 x 0.8mm 크기의 모바일용 QRNG 칩셋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고, 삼성전자의 품질기준을 통과해 2020년 4월 양산 절차에 돌입했다.
◆SKT-IDQ-비트리 삼각편대...글로벌 스마트폰·IoT·자율주행 시장 정조준
SK텔레콤은 5G 초연결시대를 맞아 더 많은 분야의 글로벌 기업들이 양자보안 기술을 필요로 할 것으로 전망하며 관련 사업을 더욱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SK텔레콤은 양자 난수를 생성하는 원천 기술을 가진 자회사 IDQ와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비트리와 함께 QRNG 칩셋을 개발해 글로벌 스마트폰, IoT, 자율주행 기업에 공급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며 일부 가시화하고 있다.
스마트폰 분야에선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에 모바일용 QRNG 칩셋을 공급함으로써 양자보안 기술이 탑재된 스마트폰 라인업을 늘려 나갈 계획이다. 또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SK 오픈 API 홈페이지에서 오픈 API를 공유하고 스마트폰에서 이용 가능한 양자보안 기반 서비스도 확대할 예정이다.
차세대 보안기능에 대한 수요가 높은 자동차 전장, 클라우드 산업 분야에 사용되는 반도체에도 QRNG 칩셋을 탑재해 반도체 성능을 고도화 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nanan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