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유림 기자 = "4개월째 통장에 입금된 돈이 0원이에요. 기장들은 지금 가족 생계를 위해 대리기사, 택배 아르바이트를 뛰면서 항공기 조종간 대신 핸들을 잡고 있습니다. 이스타항공 노동자들이 바라는 건 내가 일하던 책상, 내가 일하던 조종석에 돌아가고 체불된 임금을 돌려 달라는 겁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은 3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애견산업 사옥 앞에서 '구조조정·임금체불 지휘해 놓고 인수거부! 파렴치한 제주항공 규탄 기자회견'이 열었다.
민주노총 소속 이스타항공노조를 중심으로 대한항공직원연대, 정의당 등 50여명의 노동자가 참석했다. 이들은 마스크를 착용한 채 '이스타항공을 파산으로 내모는 제주항공 규탄한다', '1600 노동자의 생존권 파탄, 제주항공 규탄한다', '정부가 나서서 이스타항공 사태 해결하라' 등 구호를 외쳤다.
[서울=뉴스핌] 김유림 기자 = 3일 애경산업 본사 앞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는 이스타항공 노조. 2020.07.03 urim@newspim.com |
정원섭 공공운수노동조합 조직쟁의국장은 "1일 밤에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측에 10일(10영업일) 이내에 선결 조건을 모두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겠고 공문을 보냈다"며 "전일 긴급하게 직원간담회를 열었고 대책위를 구성해 제주항공에 맞서서 노동자들의 고용을 지키고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투쟁하기로 결의했다"는 설명과 함께 기자회견이 시작했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측에 보낸 선결 조건은 타이이스타젯 지급 보증 및 체불 임금액. 조업료, 사무실 운영비, 보험료 등 각종 미지급금으로 총 800억∼1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경영난으로 매물로 나오게 된 이스타항공이 1000억원 규모의 막대한 자금을 끌어올 재무 능력이 사실상 없다는 점에 있다. 이에 항공업계에서는 제주항공이 사실상 인수합병(M&A)을 할 의지가 없는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이스타항공 창업자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오너 일가가 이스타홀딩스의 지분을 전량 헌납하며 제주항공에 M&A을 재개할 것을 요청했지만, 제주항공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변희영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애경 제주항공이 인수하기로 하고부터 제주항공 직원이 이스타항공에 와서 모든 내용을 공유하고 있었음에도 이제 와서 매각에 유리한 지점을 찾겠다고 노동자 1600명 생존권 담보로 협박하고 있다"며 "제주항공의 행보는 기업이 사회적으로 지어야 할 책임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행위이자, 노동자 생존 사슬을 끊는 중차대한 범죄다"고 강조했다.
이홍래 이스타항공조종사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석주 당시 제주항공 대표와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 간의 3월 통화 내용에 따르면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의 전면 셧다운을 지시했고 임금체불과 지상조업사에 대한 미지급금 문제에 깊이 관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1월부터 제주항공 측 직원 4명이 매일 이스타항공본사에 상주하며 모든 주요한 영업활동을 감독했다"며 "또 노사간 주요쟁점들에 대해 제주항공 측과 수시로 통화하며 지휘를 받는 등 이스타항공의 구조조정 인력감축은 제주항공 측의 지시에 따라 진행됐다. 그 결과 580여명의 직원들이 길거리로 쫓겨났다"고 설명했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무산시키기 위해 고의로 무리한 선결 조건을 내걸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송민섭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장은 "집 또는 차 한 대를 살 때도 어떤 문제가 있나 꼼꼼히 살피는 게 기본이다"며 "인수한다고 밝힌 지 6개월 만에 타이이스타젯 지급 보증 등을 문제 삼으면서 인수 절차를 중단했다. 제주항공 이번 M&A 담당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서류 검토 능력이 그 정도인지 의구심이 든다. 제주항공은 이미 알고 있었으며, 고의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김유림 기자 = 이스타항공 노조 측이 확보한 이석주 전 제주항공사장과 최종구 이스타항공사장 통화 녹취파일 내용. [자료=이스타항공노조] 2020.07.03 urim@newspim.com |
또 이스타항공 노조는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한다고 밝히면서, 정부가 지난 5월 운수권을 몰아주는 혜택만 챙기고 인수를 무산시키려 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박이삼 이스타항공조종사노조 위원장은 "이스타항공이 부채가 급증하게 된 것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심각한 승객감소도 원인이지만 구조조정에 몰두하면서 고용유지지원금을 못 받았고 이유 없이 전문운항중단이 이어지면서 손실을 줄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제주항공 측의 이익을 위해 이스타항공을 희생시켜 자력 회생할 기회를 아예 박탈한 것"이라며 "그러면서도 이원5자유 운수권을 독점적으로 배분 받았고 이스타항공을 파산시켜 LCC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려고 한다"고 했다.
정원섭 국장은 "제주항공은 지난 5월 아시아나항공 및 대한항공 등을 제치고 국적항공사 중 정부로부터 운수권을 가장 많이 받아갔다. 이스타항공 인수를 감안해서 정부에서 지원한 것"이라며 "이미 받을 거 다 받았으니 이스타항공을 버리겠다고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5월 15일 항공교통심의위원회는 25개 노선 운수권을 배분했고 제주항공에 11개 노선을 몰아줬다. 특히 2배 가까운 지역으로 운항을 확대하고, 다양한 노선을 증편하며, 해외거점에서 타국으로 승객 유치가 가능한 이원5자유 및 중간5자유 운수권을 제주항공에 독점 배분됐다.
정치권 역시 제주항공을 강하게 비판했다. 권영국 정의당 노동본부장은 "인수확정을 해놓고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을 만들었다는 의혹 제기에 대해서 애경 제주항공의 부도덕한 이면을 보는 것 같아서 유감스럽다"며 "애경 계열사 제주항공이 코로나19 어려움 속에서 지금 상황을 악용해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이스타항공)폐업시키는 쪽으로 간다면 정의당을 비롯한 정치권도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박이삼 위원장은 "노동자들이 바라는 건 소박하다. 원래 내 일터로 돌아가고, 체불된 임금을 달라는 거다"며 "제주항공의 인수거부는 1600명의 이스타항공 노동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5000여명의 생존을 끊는 것과 마찬가지다"고 했다. 이어 "지금 이 시간에도 애경산업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절규하고 있는 마당에 이스타항공 노동자들을 해고로 내몰고 있는 악질적 행태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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