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구혜린 기자 = 화장품 로드숍 가맹점주들이 가맹본사와의 갈등을 공론화하기 위해 다시 국회로 향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을지로위원회의 지원으로 전국화장품가맹점연합회(이하 화가연)를 발족했으나 1년여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탓이다.
로드숍 점주들은 본사가 수익성을 위해 온라인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오프라인 점포가 입은 피해를 재차 고발할 계획이다.
◆"내 목숨 끊어달라고 부탁한 건데"...불 당긴 이니스프리 점주의 청원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니스프리·아리따움·더페이스샵·네이처리퍼블릭 등 4개 로드숍 가맹점주협의회 대표들은 오는 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면담을 갖는다.
이니스프리 가맹점주가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 [사진=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2020.07.03 hrgu90@newspim.com |
이날 로드숍 점주들은 본사의 영업 방해 및 방치를 견제할 만한 도움을 요청할 계획이다. 해당 로드숍 상당수는 매출이 80% 이상 줄어들었다며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일 평균 100만원가량의 매출을 올린 매장이 20만원 수준으로 급감한 것.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도 있지만, 점주들은 본사의 일관된 '온·오프라인 차별 정책'이 손님들의 발길을 끊고 있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이니스프리와 아리따움, 에뛰드 등 브랜드를 보유한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자사 제품을 오프라인 로드숍 뿐만 아니라 11번가 등 각종 온라인 쇼핑몰에 직접 공급하고 있다.
제품이 똑같지만 가격·프로모션 관리가 균일하지 않은 게 문제다. 아리따움을 운영하는 한 가맹점주는 "당장 이번 달에 오프라인에 풀린 '네오쿠션'을 사려고 해도 아리따움 매장은 정가를 다 받지만, AP몰(아모레퍼시픽 공식몰)에서는 10% 할인에 증정품까지 주고 있다"며 "손님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누가 매장에서 정가 주고 사겠느냐"고 말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이 내용이 담긴 청원이 올라왔다. 이니스프리를 운영한다고 밝힌 청원인은 로드숍이 온라인 구매를 위한 '테스트 매장'으로 전락했다고 호소했다.
그는 "왜 본사는 가맹점을 모집해놓고 더 싼 가격으로 쿠팡에 공급하는 건가"라며 "왜 가맹점에서 힘들여 키워온 브랜드를 온라인에 무임승차 판매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가맹비 내고 가맹계약서에 사인할 때 온라인에서 (저가에) 판매한다는 조항은 없었다"고 썼다.
사실상 이 청원이 이정문 의원과 점주들의 면담을 성사시킨 셈이다. 이정문 의원실 관계자는 "면담 내용이 청원 내용과 같다는 것을 대충 짐작하고 있다"며 "일단 얘기를 들어보고 파악해보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 청원은 화장품 로드숍을 운영하는 점주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1200여명의 동의를 얻은 상태다. 네이처컬렉션을 운영하는 가맹점주는 "전국 매장 문 닫게 해달라는 건 내 목숨을 끊어달라고 부탁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계정 바꿔서 동의 3번 눌렀다. 같은 자영업자로서 큰 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로드숍 브랜드 가맹점 수 추이. 2020.05.20 hj0308@newspim.com |
◆"로드숍 줄어야 본사가 산다"...막바지로 치달은 본부 vs 가맹점 전쟁
로드숍 가맹점주들이 국회로 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3월 뜻을 같이하는 일부 로드숍 점주들은 을지로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전국 단위 연합회를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2018년 후반부터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계열 로드숍 점주들이 잇따라 집회를 열면서 이룬 쾌거였다.
하지만 1년여간 로드숍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관계자들은 화가연 활동 자체도 네다섯 차례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출범시 지속적인 왓치독(감시자) 역할을 약속했던 을지로위원회의 관심도 그때뿐이었다. 화가연 관계자는 "아무래도 구성원들이 다 개인 사업자들이다 보니 일반 노조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본사와의 투쟁을 외치던 로드숍 점주들은 이제 이 싸움도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아직까지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거래 정보공개에는 지난해 로드숍 가맹점 수 현황이 모두 등재되지 않았다. 다만 지난 1년여간 2018년도 대비 절반가량의 로드숍이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경영 악화에 자발적으로 매장 운영을 포기한 가맹점주가 부지기수란 얘기다.
화장품 가맹 본사의 경영 실태를 판단하는 시장에서는 오프라인 점포 구조조정이 긍정 요소로 평가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경우 이니스프리 국내외 매장 정리는 호재다. 화장품 종목 담당 애널리스트는 "코로나19 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채널 시프트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어 2021년 국내 화장품 내 온라인+면세 비중은 75%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점주들의 희망은 '매출이 늘어나는 것'이 아닌 '장사를 잘 접는 것'으로 무게 추가 기울고 있다. 이니스프리를 운영 중인 가맹점주는 "본사가 원하는 건 우리가 알아서 장사 접고 떠나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면서 "대부분의 점주들이 손해 보지 않고 문 닫는 걸 원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점주협의회는 가맹본부의 책임이 오는 10월 있을 정무위 국정감사에서까지 다뤄지길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감에서의 화장품 가맹본부 갑질 문제는 지난 2013년 '대리점 물량 밀어내기'가 질타를 받은 이후론 전무하다. 당시 손영철 아모레퍼시픽 사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아리따움 점주들과의 상생을 약속한 바 있다.
hrgu9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