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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힘든데"...삼중고 겪는 유통업계에 또 규제 족쇄

기사등록 : 2020-08-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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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법 개정안' 두 달간 8건 발의...대부분 규제 강화에 초점
유통 발전법 아닌 '유통 억제법'..."10년전 잣대로 만든 규제는 불합리"

[서울=뉴스핌] 남라다 기자 = "유통 기업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내수 침체, 온라인 공세로 존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가뜩이나 힘든데 골목상권 보호에 효과가 없다고 판명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불이 난 곳에 기름을 붓는 격입니다"

정치권의 유통 규제 강화 움직임에 대한 유통업계 한 관계자의 푸념이다. 최근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한 주요 유통업계의 시선은 국회로 향해 있다. 국회가 지난 5월 개원한 뒤 두 달여간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 강화를 골자로 한 법안이 쏟아지면서다. 

대형마트들은 영업시간제한과 의무휴업일 규제로 매달 둘째주와 넷째주 일요일에 문을 닫는다. [사진=뉴스핌 DB] 2020.04.10 sjh@newspim.com

유통업계는 상당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오프라인 점포를 찾는 고객들이 급감해 실적이 크게 악화된데다 내수 침체, 온라인 쇼핑시장의 가파른 성장세까지 겹쳐 삼중고를 겪고 있어서다. 여기에 출점 제한과 의무휴업 규제가 더욱 강화되면 사실상 성장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유산법 개정안' 두 달간 8건 발의...대부분 규제 강화에 초점

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개원한 21대 국회에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유산법) 개정안은 현재 기준 8개나 발의됐다. 1건을 제외한 7건은 규제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일부 개정안에는 기존 규제 대상인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SSM) 외 백화점과 복합쇼핑몰·아웃렛·면세점·전문점 등 대규모 점포에도 심야 영업제한과 의무휴업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대형 유통기업으로부터 상품을 공급받는 상품공급점이나 유통 기업이 운영하는 직영점, 직영점형 체인사업, 프랜차이즈형 가맹점을 준대규모 점포로 포함해 영업시간 제한 등 법적 규제를 받게 해야 한다는 것도 포함됐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매출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SSM과 편의점, 다이소 등 대형 유통업체의 가맹사업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복합쇼핑몰을 영업제한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며 유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대규모점포 등록을 제한할 수 있는 구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현행법에는 전통상업보전구역 1km 내에 등록할 수 없게 돼 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상점가 등 기존 상권이 형성된 상업보호구역 1km 이내에 점포를 개설할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따라 등록을 금지·제한하거나 조건을 붙일 수 있다.

여당이 발의한 유통 규제법 개정안. [자료=국회] 2020.08.03 nrd8120@newspim.com

여당인 김정호 의원도 대규모점포 출점을 제한하는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법안을 냈다. 대규모점포 개설 시 기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변경하고 기존 출점제한 범위인 전통상업보전구역 1km 이내에서 최대 20km까지 확대하는 내용이다.

같은 당인 이장섭 의원은 대규모 점포나 준대규모 점포에 대한 출점 제한 규제의 존속기한을 2025년까지 5년 추가 연장하는 개정안을 내놨다. 현행 유산법 시행기간은 올해 11월 23일까지다.

점포 개설할 때 제시한 상생안을 이행하지 않은 것에 대한 패널티 조항을 신설하는 법안도 나왔다.

야당인 이주환 미래통합당 의원은 점포 출점 시 중소 유통기업과의 상생협력안을 의무화하고 이행 실적이 미흡할 경우 개선권고 대상 및 내용 공표, 더 나아가서는 기간을 정해 이행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포함한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반면 이종배 미통당 의원만 유일하게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법안을 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월 2회 휴무)과 영업제한 시간(자정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에도 온라인 배송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다만 대형마트와 준대규모 점포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통신판매업으로 신고해야 한다는 전제가 달렸다.

◆유통산업발전법 아닌 '유통 억제법'..."강산도 변하는데 10년 전 잣대로 규제" 지적

이러한 정치권의 규제 강화 조치에 유통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업계에서는 가뜩이나 장사도 안되는데 강화된 규제로 기업을 옥죄면 사실상 유통산업 기반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 주요 유통업체들의 실적은 크게 악화된 상태다. 최근 수년간 이어진 내수 침체와 소비심리 위축에 더해 올해 초 국내에서 발현한 코로나19 영향이다. 롯데쇼핑은 올 1분기 영업이익이 52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4.6% 크게 감소했다.

신세계는 1분기 영업이익이 97% 급감했고 현대백화점은 80.2% 떨어졌다. 홈플러스(2월 결산법인)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38.4% 줄었다. 당기순손실은 5322억원으로 전년보다 3995억원 대폭 늘었다. 올해 변경된 새 회계기준을 적용하면 지난해 영업이익은 100억원에도 못미친다.

특히 업계에서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유통업체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이미 효과가 없다고 판명이 났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소매업태별 시장점유율 추이. [자료=통계청]

이는 수치로도 입증된다. 통계청 소매업태별 시장점유율 조사에 따르면 대형마트의 시장 점유율은 유산법이 시작된 2012년 14.5%에서 지난해 8.7%로 거의 반 토막 났다. SSM도 13.1%에서 11.9%로 시장점유율이 하락했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 포함된 전문소매점도 대형마트와 SSM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2012년 시장 점유율은 40.7%였는데 지난해 36.3%로 줄었다. 유산 규제법이 골목상권 보호에 효과가 없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반면 무점포 소매점(온라인 쇼핑과 홈쇼핑)은 같은 기간 13.8%에서 54.7%로 8년 만에 4배 이상 치솟았다. 대형 오프라인 유통업체 규제가 엉뚱하게도 온라인 쇼핑과 홈쇼핑 시장 규모만 키운 셈이다.

이미 온라인 쇼핑시장에 주도권을 뺏긴 주요 유통업체들은 올해 '고강도 구조조정'에 돌입한 상태다. 롯데쇼핑은 전체 점포의 30%를 정리하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연내에는 백화점·마트·슈퍼·롭스 등 120개점 폐점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홈플러스도 안산점·대전탄방점·둔산점·대구점 등 4개 점포를 폐점을 전제로 한 매각을 추진 중이다. 안산점과 대전탄방점은 이미 매각절차를 완료했고 둔산점과 대구점은 주인을 찾고 있다. 이마트도 수익성이 떨어진 전문점에 대한 구조조정에 착수한 상태다. 채산성이 떨어졌던 삐에로쑈핑과 부츠의 온·오프라인 매장은 철수했다.   

유통업체가 점포 구조조정에 들어가면 중소 납품업체는 중요한 판매처를 매장 직원은 일자리를 잃어 대량 실직 우려도 나온다.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유통가 전체에 연간 약 10조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유통산업의 중심축이 온라인으로 옮겨간 건 부정할 수 없는데 오프라인 유통업체만 규제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유산법은 전통시장 살리는데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며 "10년 전에 만들어진 잣대로 오프라인 업체를 동일하게 규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소매업 전체 발전과 내수 진작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소비자 후생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nrd8120@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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