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한국 재계의 큰별 이건희 삼성 회장이 25일 운명을 달리 했다. 지난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진 이후 6년 5개월 가량 삼성서울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되지 못한 채 끝내 숨을 거뒀다. 이 회장의 업적은 이병철 창업주로부터 물려받은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키웠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 회장의 별세 소식에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작은 TV 제조사를 글로벌 가전제품 거인으로 만든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이 회장이 리더십을 발휘한 약 30년간 삼성전자는 글로벌 브랜드로 부상했다."(AP통신),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은 반도체. 휴대폰 등 분야에서 삼성을 세계 최고 기업으로 키워냈다."(AFP통신), "소니 등 라이벌들에 도전하기 위해 혁신을 추진하려고 노력했다"(로이터통신) 등이다. 특히 뉴욕타임즈는 "이 회장은 삼성의 '큰 사상가'(big thinker)로 남아 거시전략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삼성이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 회장의 반도체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엄격한 품질관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 19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고 했던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계기로 도입된 '신경영'의 이념이 글로벌 삼성의 씨앗이었다. "불량은 암이다. 삼성은 자칫 잘못하면 암의 말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게 당시 이 회장이 진단한 삼성의 모습이다. 특히 지난 1995년 휴대전화기의 품질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받은 이 회장은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 수 천명의 직원을 모아놓고 불량품들에 대한 '화형식'을 가짐으로써 임직원들에게 품질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기도 했다. 이후 삼성은 '품질'의 대명사가 됐고,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신경영'의 성과다. 여기에 한국적 재벌그룹의 장점을 내세운 반도체에 대한 과감하고, 신속한 투자를 통해 초격차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현실 정치에 아랑곳 않던 이 회장이지만 지난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구시대적인 정치권의 행태와 규제 위주의 관료적 행정에 대해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라고 꼬집었던 발언이 정치권과 관료들로부터 집단 성토를 받기도 했다. 반면 국민들은 이 말에 속 시원해 했고, 지금은 더 절절해 졌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고인을 떠나 보낸 삼성은 이제 3세인 이재용의 시대를 맞게 됐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유고 이후 실질적인 총수 역할을 해 왔고, 지난 2018년에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동일인 지정을 받아 공식적인 삼성의 총수 직에도 올랐지만 이번과는 그 의미가 크게 다르다. '이재용의 삼성'은 그리 순탄치 않다. 이 부회장 앞에 놓인 숙제들은 어느 하나 간단한 것이 없고,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다는 점이 곤혹스러울 수 있다. 이 회장의 재산 상속에 따른 승계 작업과 그룹 지배구조 개선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물산, 삼성SDS 등 4개 계열사의 주식 보유액이 18조원에 달하고, 상속세법상 최대주주 할증을 감안하면 상속세 만도 10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 부회장에 대한 재판은 그 결과에 따라 자신은 물론 삼성의 미래에도 엄중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불법·편법적 방식으로 합병해 경영권을 승계받았다는 혐의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고, 국정농단 뇌물혐의 파기 환송심은 9개월 만인 26일부터 재개된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보험업법 개정안도 변수다. 이 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총 자산의 3% 외에는 모두 매각해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 경영권에 중대한 위협이 될 소지가 크다. 이 부회장이 지난 5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한 선언은 고무적이다. 자식에 대한 승계를 고려하지 않는 지배구조 개선이라면, 국민적·사회적 공감을 얻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앞에 펼쳐진 난제들을 잘 헤쳐 나가서 머릿속에서 그리는 '뉴삼성'이 글로벌 무대에서 더 높은 위상을 떨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