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정탁윤 기자 = 보험업계 숙원인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안의 연내 처리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 21대 국회들어 여야가 관련 법안을 잇따라 발의했지만, 의사협회 등 의료계의 반발에 제동이 걸렸다. 의료계는 개인정보 유출 우려 등으로 해당 법안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전날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고용진 의원과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 등이 각각 대표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을 논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소비자 불편 해소 차원에서는 여야가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뤘지만, 일부 반대 의견을 더 청취하기로 했다.
이날 법안 논의에 앞서 최대집 의사협회장 등 의료계는 국회 정무위 의원들과 잇따라 접촉, 법안 처리에 반대 입장을 전달한 바 있다.
국회 정무위 관계자는 "소비자 불편 해소 차원의 여야 공감대는 있으나 의료계의 반대가 워낙 커 추후 다시 논의 하기로 했다"며 "물리적으로 올해는 어렵고, 내년 이후 정무위 차원에서 다시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병원 진료후 영수증과 관련 서류를 소비자가 직접 보험사에 제출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현행 실손보험 청구 시스템은 소비자나, 병원, 보험사 모두에게 불편을 야기하는 구조로 꼽힌다. 전산화되지 않은 실손의료보험 청구는 그 정도가 감내할 만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는 비효율적인 실손보험 청구 절차를 개선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서울=뉴스핌] 정탁윤 기자 = 현행 실손보험 청구 체계 [표=손해보험협회] 2020.12.03 tack@newspim.com |
우선 소비자 입장에서 번거로운 청구 절차는 '청구 포기'로 이어지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가 2018년 12월 한국갤럽에 의뢰해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의 보험금 미청구 비율은 47.5%였다. 그 이유는 '진료금액이 소액이라'는 대답이 73.3%로 가장 많았고 '병원 방문이 귀찮고, 시간이 없다'는 이유가 44%, '증빙서류를 보내는 것이 귀찮다'가 30.7%였다.
병원 입장에서도 대량의 종이문서 생산에 따른 업무부담 발생으로 원무과 본연의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강남세스란스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 등 일부 병원의 경우 삼성화재나 KB손보, 농협손보 등과 개별적으로 전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연간 8000만건 청구 시 서류가 4장일 경우 3억2000만장의 종이문서가 필요하지 않느냐, 또 팩스나 스마트폰 앱으로 청구하는 경우도 서류를 화면에 띄어놓고 심사해야해서 업무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사회 곳곳 시스템이 전산화된 상황에서 아직도 종이 영수증을 제출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하루빨리 해소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의료계는 간소화 절차가 도입될 경우 보험사가 환자의 질병 정보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고액의 진료나 수술이 필요한 경우 보험사가 간소화 절차를 통해 얻은 질병 정보를 이용해 '병력 고지 의무 위반'으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 등이다. 아울러 환자의 민감한 개인정보가 중계기관을 통해 보험사에 넘어가는 과정에서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료계는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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