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하수영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를 출발해 아랍에미리트(UAE)를 향해 호르무즈 해협 인근 공해상을 항해하던 한국 국적 유조선 '한국케미호'가 이란 정규군 소속 혁명수비대에 나포됐다. 이와 관련해 "이란이 미국의 제재로 인해 자금이 한국에 묶인 상황을 해결하고자 '회색지대(Gray Zone) 전략'을 쓰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류성엽 21세기 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6일 '이란 혁명수비대 한국 선박 나포와 회색지대 전략' 보고서에서 "이란의 한국 국적 선박 나포 행위는 미국의 대 이란제재 효과 회피를 위해 미국의 동맹인 한국을 상대로 회색지대 전략을 적용한 이란의 군사적 도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회색지대 전략이란 냉전시대 미국의 역사가, 외교관, 정치가였던 조지 케넌이 정의한 용어로, 여기서 '회색지대'란 정치·안보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여러 가지 권력 요소를 사용하는 활동이 이뤄지는 공간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국제 관습, 규범 또는 법률에 도전하고 훼손하거나 위반해 미국과 동맹국의 이익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무부 대변인 2021.1.6 [사진=이란 외무부 홈페이지 캡처] |
이란은 미국, 한국과 정치·경제·외교적으로 깊이 얽혀 있는 국가다.
우선 미국은 핵·미사일 개발 계획을 이유로 2018년 '이란 핵협정(JCPOA)'을 탈퇴하고 대 이란 경제 제재를 시행 중이다. 2019년 5월에는 한국, 중국, 일본 등 8개국에 대해 이란산 원유 수입의 한시적 유예 조치를 중단했다. 이란이 북한과 군사전략 및 주요 무기체계 기술을 공유하고 있는 관계라는 점이 주요한 원인이 됐다.
원래는 이란이 원유를 한국에 수출하면, 한국이 이를 원화로 결제해 줬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미국이 대 이란 경제 제재조치를 시행하면서, 이란산 원유 수입 대금을 원화로 결제하는 것이 제한되기 시작했다. 이란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때문에 자금 70억 달러가 한국에 묶여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70억 달러'가 사실상 이번 한국 선박 나포 사태의 핵심적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류성엽 연구위원은 "이란이 70억 달러를 포함한 제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색지대 전략을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류 위원은 "이란은 회색지대 전략을 통해 한국과의 경제 제재조치를 완화해서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되고 있는 한국케미호 2021.1.4 [사진=로이터 뉴스핌] |
사실 이란과 경제적, 군사적으로 직접 대립하고 있는 상대는 미국이다. 그러나 이란은 한국 선박을 나포해 한국을 문제의 중심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류 위원은 "'대리인 전쟁(Proxy war)'을 통해 미국과의 직접 대립을 회피하며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은 현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청해부대를 호르무즈 해협에 급파하긴 했지만, 상대는 이란 정규군에 속하는 혁명수비대라 직접 군사행동은 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류 위원은 "단독 군사행동을 위한 선택지가 없다고 해서 협상에만 매몰될 경우 향후 대한민국 국민들은 불량국가 및 테러단체 등 다수의 국제관계 행위자들에게 손쉬운 인질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한미 동맹 강화를 통해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 단독 파병된 청해부대를 미국 주도의 연합체인 국제해양안보구상(IMSC) 참가 방식으로 변경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사우디, UAE 등 중동 역내에서 이란과 경쟁관계에 있는 국가와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예맨 등 주요 분쟁 지역에 대한 무상 군사 원조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협상 시에는 우선순위를 대한민국 국민의 즉각적인 억류 해제에 중점을 두되, 이란이 우리 국민에 대한 인도를 거부할 경우 미국 중심의 대 이란 경제 제재에 대한 적극적 협조를 위해 이란의 원유 수출 대금 회수 시도 행위를 방해하고, 외교적으로 대응하는 보복조치를 시행할 필요성이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이란의 핵 농축 시도에 따른 추가적인 유엔 제재 시행 시 이란의 외교적 고립을 시도해 볼 필요성도 있다"며 "선박 억류에 따른 국내 선사의 피해는 정부 예산 및 보험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suyoung071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