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한태희 기자 = 정부가 지난해 여름 학대받는 아동에 대한 보호 대책을 발표하고서도 후속 제도 개선이 3개월 늦어지면서 보호 사각지대가 생겼던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당시 지연된 시점이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 양 사건이 발생했던 때라 정부의 늑장대응으로 안타까운 비극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 피해아동 보호시설 인도 기준 개선 늦어져
14일 경찰청과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7월 29일 '아동·청소년 학대 방지대책'을 내놨다. 당시 정부는 8월까지 아동학대처벌법상 응급조치에 따른 보호시설 인도 기준을 개선한다고 발표했다.
보호시설 인도 기준에는 ▲멍이나 상흔 등 외관상 신체 학대 정확히 확인되는 경우 ▲의료진에 의한 신고의 경우 등을 추가했다. 피해아동을 학대 가해자로부터 신속히 분리·보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 개선은 정부가 제시한 일정보다 석 달이 지나서야 현장에 적용됐다. 복지부와 경찰청은 아동학대 대응업무 매뉴얼과 아동학대 수사업무 매뉴얼을 개정, 12월 1일부터 현장에서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개선된 제도의 도입이 늦어진 이유는 매뉴얼 개정 과정에서 혼선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10월 14일 열린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관련 매뉴얼에 '아동학대로 의심되는 멍, 상흔 등에 대한 2주 이상의 치료 기간이 필요하다는 의사소견이 있는 경우'를 추가했다.
이후 정인 양 사망 사건이 터지자 매뉴얼을 또 개정하며 '의료인 등이 아동학대로 의심되는 멍, 상흔을 발견해 신고한 경우'로 고쳤다. '2주 이상 치료 기간'이라는 조건을 달았다가 뺀 것이다.
아울러 복지부는 정인 양의 경우처럼 재신고 사례를 우선 조치한다고 매뉴얼에 새로 넣었다. 복지부는 업무 매뉴얼 개정 지침을 지자체 등 현장에 내려보냈다가 정인 양 사망 사건 이후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양평=뉴스핌] 정종일 기자 = 6일 오전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안장된 정인 양 묘역의 비목. 2021.01.06 observer0021@newspim.com |
경찰청 관계자는 "즉각분리는 법 개정 사항으로 법이 통과돼 오는 3월부터 시행 예정"이라며 "지난해 아동학대 수사업무 매뉴얼을 개정해 배포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매뉴얼을 새로 바꾸고 현장에 적용하느라 허비한 3개월 사이 정인 양은 사실상 방치됐다. 특히 9월 23일 정인 양에 대한 마지막 신고의 경우 아동학대를 의심한 의료진이 경찰에 신고했다.
보호시설 인도 기준이 정부가 제시한 일정대로 차질 없이 진행됐더라면 정인 양은 마지막 신고가 들어왔을 때 즉시 양부모와 분리됐을 것이다. 하지만 정인 양은 양부모와의 분리조치 없이 집으로 보내졌고 결국 10월 13일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숨졌다.
◆ 경찰·복지부 정보 연계도 시간 소요
아동학대 방지대책에서 제시한 일부 과제의 경우에도 추진 속도가 더디다. 위기 아동 조기 발견 및 적극 대응을 위한 경찰청 APO(학대예방경찰관)와 복지부(e아동행복시스템), 법무부(출소 정보) 간 정보 공유는 빨라도 3월 이후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피해아동에 대한 전문가정위탁제도 활성화도 오는 6월에야 완료된다. 학대전담공무원에 특별사법경찰관 지위를 부여하는 방안은 올해 내내 검토할 장기 과제다. 복지부와 경찰청 등은 국회에서 관련 법을 고쳐야 하는 과제라고 설명했다.
더욱이 앞으로 지역 내 아동과 청소년을 보호할 임무가 있는 자치경찰은 상반기 시범운영을 거쳐 오는 7월에야 전국적으로 본격 시행된다. 정부가 후속 조치에 속도를 내지 못하면 자칫 제2, 제3의 정인 양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1년 동안 112에 1만5929건에 달하는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왔다. 하루 평균 43건이 넘는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아동학대가 발생했을 때 아동을 가해자와 즉각 분리해서 검사하고 장기 보호해야 한다"며 "정부가 매뉴얼을 만들어 교육하고 홍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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