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정윤 기자= 씨티은행이 한국시장에서 소매금융 사업 철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시장 철수 시에는 국내 은행권 중에서도 인터넷전문은행, 핀테크 등에 매각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씨티그룹이 한국 시장 철수를 비롯해 아시아지역 소매금융 사업부문 정리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해 취임한 제인 프레이저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가 사업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고, 그 일환으로 한국, 태국, 필리핀, 호주 등 아시아 태평양 지역 소매금융 사업을 매각하는 방안에 무게를 두고 있다"며 "다만 아직 결정된 상황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씨티은행 본사는 성명을 통해 "지난 1월 프레이저 CEO가 밝힌 바와 같이, 씨티는 각 사업들의 조합과 상호 적합성을 포함해 냉정하고 철저한 전략 검토에 착수했다"며 "다양한 대안들이 고려될 것이고 장시간 동안 충분히 심사숙고해 결정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씨티은행 관계자는 "특별한 입장 표명을 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씨티은행 노조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사실 관계를 확인 중"이라며 "한국 시장 철수는 고용안정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보니 민감하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 해두고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유명순 한국씨티은행장. (사진=한국씨티은행) |
◆ 한국 철수설, 이번엔 진짜?
한국씨티은행은 지난 몇 년간 지점 통폐합과 인력 감축이 이뤄지면서 주기적으로 철수설이 대두된 바 있다. 2014년 56개의 지점을 폐점할 당시에도 한국 시장 철수설이 돌았고, 2017년에도 133개 지점을 43개로 대대적 통폐합하면서 또 한 번 철수설에 불을 지폈다. 지난 1월에는 지점 수를 더 줄이면서 총 영업점 수가 기존 43개에서 39개로 축소됐다.
이미 한국씨티은행은 기업금융(IB), 자산관리(WM) 등에 비해 개인금융 비중이 낮다. 이 때문에 소매금융 사업을 철수한다 해도 은행 차원에서는 큰 타격이 없을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씨티은행이 국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2014년 2.61%였던 대출금 시장 점유율은 매년 하락세를 이어가며 2019년에는 1.63%까지 내려왔다. 같은 기간 예수금 시장 점유율도 3.13%에서 1.95%로 떨어졌다.
올해 취임한 프레이저 CEO는 구조조정 전문가다. 프레이저 CEO는 지난 2015년 중남미지역을 총괄하면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등의 지역에서 소매금융과 신용카드 사업부문을 잇따라 매각한 전력이 있어, 한국씨티은행 매각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아울러 씨티은행은 최근 은행권에서 화제인 마이데이터사업(본인신용정보관리업)도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신청하지 않았다. 씨티은행은 플랫폼 경쟁력이 뛰어난 빅테크·핀테크와 손잡고 마이데이터사업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겠다는 계획이지만, 개인금융에 힘을 빼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 시중은행 보다, 인터넷은행‧핀테크 '매각 가능성↑'
이번 보도에서 블룸버그는 "철수가 결정되면 해당 사업부문을 그 나라 은행에 매각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이면서 국내 매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만약 씨티은행이 소매사업 부문을 국내 은행권에 매각한다면 시중은행들보다 인터넷은행, 핀테크, 빅테크(대형 정보기술회사) 매각이 승산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4대 은행을 포함한 시중은행들은 탄탄한 지주사를 기반으로 얼마든지 개인금융 부문을 강화할 수 있는 상황이다. 씨티은행은 프라이빗뱅커(PB) 제도를 은행 중 처음으로 도입하는 등 WM 부문에 강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은행들은 비대면 플랫폼을 통해 WM을 보편화하고, WM 복합점포를 설립하는 등 WM 사업부의 역량이 충분히 크다.
오히려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 등 인터넷은행이나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와 핀테크 업체들이 금융사업 확대를 위해 씨티은행의 소매금융 사업을 인수할 여건이 크다. 전통 은행권이 가진 인프라와 고객을 그대로 흡수해 금융사업에 안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네이버가 신한금융그룹으로부터 제주은행 매입을 희망한다는 소식이 뜨거운 감자였던 것처럼, 씨티은행 매각도 범 금융권의 화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국계 은행들이 전반적으로 가계대출 위축 때문에 국내 소매 영업을 꺼리는 것으로 안다"며 "최근 당국의 대출 규제 등에 소매금융을 더 꾸려나갈 동력이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jyo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