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보람 기자 = 공동경비구역(JSA) 내에서 의문사한 고(故) 김훈 중위의 유족들이 김 중위의 순직처리가 지연돼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최종 패소했다. 순직처리 지연이 행정청의 악의적 의도 때문이 아니라 불명확한 법령 등에 의해 어쩔 수 없었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고 김 중위 유족들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측 상고를 기각하고 국가배상청구를 배척한 원심 판결을 25일 확정했다.
재판부는 "김 중위 사망 구분을 심사했던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진상규명 불능'의 경우 이를 순직으로 인정할 직접적 근거조항이 없었고 당시 뚜렷한 선례나 법령해석지침이 없는 상황에서 타살 가능성을 제기한 국회 국방위원회 의정활동 보고서, 초동수사 소홀로 인해 사망원인이 불분명하게 됐다는 취지 대법원 판결,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진상규명불능' 결정이 있었다고 해서 곧바로 망인의 사망을 순직으로 결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김 중위에 대해 순직처리를 지연할 만한 행정청의 악의적 동기나 의도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지난 1998년 2월 24일 김 중위는 JSA 내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고 군당국은 같은해 6월 김 중위 사망을 자살로 기록하고 이같은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듬해 국회 국방위원회 '김훈 중위 사건 진상규명 소위원회'는 김 중위가 타살됐을 수도 있다는 취지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에 김 중위 유족들은 이들 자료 등을 토대로 국가가 사건 진상을 은폐·조작했다며 국가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위자료 최종 1200만원을 확정 받았다.
이후 10년이 지나 2009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김 중위의 사망 원인에 대해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김 중위 유족들은 2010년 8월 육군본부에 사망 구문을 재심해 순직으로 변경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당국에서는 이를 기각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해 '군 수사기관의 초동수사 과실 등으로 인해 사망원인이 불분명하게 된 망인의 순직 여부에 대해 재심의하여 순직으로 인정할 것을 시정 권고한다'고 의결했고 김 중위의 순직은 2017년 8월 인정됐다. 사망 약 20년 만이었다.
김 중위의 유족들은 이 과정에서 군당국의 순직처리 거부 또는 지연으로 정신적 고통을 주장,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2심은 모두 김 중위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권익위의 시정권고 이후 약 5년간 순직처리가 지연된 것은 명확하지 않은 근거 법령과 국민권익위원회 보류 요청에서 비롯된 것으로 행정청의 악의적 동기나 의도가 없었다"며 이같이 판단했다.
대법원 역시 이같은 원심에 법리적 오해 등이 없다고 보고 김 유족 측 상고를 모두 기각,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은 "행정청 처분을 구하는 신청에 대해 상당 기간 처분 여부가 지체됐다고 해서 이를 곧바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가 구성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공무원이 일반적으로 객관적 주의의무를 결여해 처분 여부 결정을 지체함으로써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인정될 정도에 이른 경우에 비로소 국가배상책임 요건을 충족한다"는 기존 판례를 근거로 이같이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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