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
사실 모순이다. 경영권은 조선시대 임금이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줬던 것과 같은 세습의 대상이 아니다. 영원히 손에 쥐고 있을 수 있는 권한도, 누구에게 마음대로 나눠줄 수 있는 소유물도 아니다.
회사의 주인은 오너가 아닌 주주들이며, 경영권 등 중요한 의사결정은 오너의 독단적인 선택이 아니라 주주총회라는 최고의사결정기구에서 결정된다. 400년 전 유럽에서 태동해 굳혀지기 시작한 주식회사의 개념이 지금 상기되고 있는 이유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재계 화두로 떠오르면서다.
그동안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오너이자 총수의 사례는 여럿 있다. 전문경영인(CEO) 체제로 전환을 예고하며 은퇴를 선언한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도 그 중 한 명이다.
오너경영 체제는 뚜렷한 장점이 있다. 단기 성과를 중시하는 전문경영인과 달리 장기적인 안목으로 성장 전략을 세우고 과감한 투자로 회사의 성장을 주도할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오너경영인들이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점은 매우 명확하다.
하지만 창업주 일가가 보유한 소위 '쥐꼬리'만한 지분으로 수 십 곳의 계열사를 거느리는 지금 재계 구조로는 더 이상 건전한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다는 한계도 명확하다. 2~4세 경영에 접어들며 일부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는 창업주 일가에 수 만 명의 생계를 맡겨도 되는지에 대한 논란도 끊이질 않는다.
소유와 경영 분리의 공개 선언은 매우 이례적이며 과감한 결단이지만 여전히 불완전하다.
서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지만 장, 차남을 각각 셀트리온과 셀트리온제약, 셀트리온헬슬케어 사내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두 아들 모두 셀트리온에서 부사장과 이사 역할을 맡고 있어 완벽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고 보기 어렵다.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서 회장의 의중이 반영될 가능성도 높다.
여전히 대내외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서 회장의 역량을 활용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회사에 더 손해가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섭정'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셀트리온은 서 회장의 은퇴 외 구체적인 소유와 경영의 분리 계획을 밝힌 바 없다. 북유럽과 같은 재단 소유 기업 모델이 자주 거론되기도 하며, 가까이 유한양행과 같이 일찍이 경영권 상속을 포기하고 창업주 일가는 일체 회사에서 일하지 않는 대표적인 모범사례도 있다. 대승적인 결단을 내린 그룹들은 지분 매각 등으로 지배구조까지 개선해 불필요한 오해를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다.
과거 총수일가가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을 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전문경영인을 앞세우는 면피식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이뤄진 사례는 여럿 있다. 앞으로 투자나 인수합병, 매각과 같은 회사의 주요 결정을 최종적으로 누가 내리는지 유심히 지켜본다면 진정한 의미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었는지 판단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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