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유명환 기자 = "매년 정부의 공시가격 발표를 볼 때마다 숨 턱턱 막혀요. 40센치 벽 사이를 두고 집값이 1억원이 차이가 나다니요. 3년 전 이집으로 이사 올 때 윗집보다 높은 가격으로 인해 신용대출을 받고 이사했는데…"(노원구 상계동 성원아파트 거주자 김모 씨)
"참을 만큼 참았어요. 고가 아파트에 사는 게 죄나요. 강남 아파트 공시가격이 30%나 올랐을 때 단체 이의신청을 했을 때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입주민 모두가 이의신청에 서명할 거에요."(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입주민 한모 씨)
매년 정부가 공시가격을 발표한 이후 전국 곳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전국 주요 아파트 단지 같은 층 같은 면적에 거주하고 있지만 두 가구의 공시가격이 다르게 매겨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주요단지 입주민들이 집단으로 공시가격 이의신청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깜깜이' 공시가격 산정방식에서 비롯된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상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뉴스핌] 백인혁 기자 =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무역협회에서 바라본 서울도심 아파트의 모습. 2021.02.17 dlsgur9757@newspim.com |
◆'천차만별' 가격차…"참을 만큼 참았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성북구 래미안길음센터피스 입주자대표회의가 국토교통부에 공시가격 상승에 대한 집단 이의신청 제출했다. 강남의 대표 단지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민위원회는 이의신청을 위해 절차를 밟고 있다.
해당 단지 입주민들은 공통으로 아파트 가격 상승분보다 높은 공시 가격이 문제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성북구 래미안길음센터피스 입주자대표회의는 "아파트 공시가격 상승률은 35%를 넘어, 보통 서울시민인 입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다"라며 "거래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공시 가격으로 산정했다"고 말했다.
은마아파트 입주민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입주민 정모 씨는 "아파트 가격은 들쑥날쑥하지만 공시가격 매년 오르고 있다"며 "해마다 인상분에 따른 보유세와 건강보험료, 주택연금 납부 금액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입주민들이 정부의 공시가격 이의신청에 대해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의 공시가격 상승률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최근 국토부가 발표한 전국의 공시가격안에 따르면 서울의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은 19.91%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상승률(5.98%)보다 3배 넘게 상승한 추세다.
서울 25개구의 공시가격 상승률 순위를 보면 노원구가 34.66% 올라 가장 많이 뛴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성북구(28.01%) ▲강동구(27.25%) ▲동대문구(26.81%) ▲도봉구(26.19%) ▲성동구(25.27%) 등 순이었다. 강남구(13.96%) 서초구(13.53%) 등 강남권 대표지역의 공시가격 상승률은 작년(강남구 25.57%·서초구 22.57%)보다 줄었다.
◆"공시 가격이 되레 아파트 값 부추겨"
문제는 공시 가격과의 격차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 반포청구아파트 101동(전용 면적 80㎡)의 공시가격은 15억 5500만원이다. 하지만 실제 거래가격은 이보다 1억 2500만원 낮은 14억 3000만원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잠원동 반포청구아파트 인근 P부동산중개사무소 직원은 "매년 정부가 공시가격 발표 이후 주변 시세가 오르고 있다"라며 "공시가격이 기존 거래 가격보다 2억원 가량 높게 책정되면서 소유주들이 물량을 회수하거나 가격을 공시가격에 맞추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반포동 래미안신반포팰리스(전용면적 133.02㎡)의 경우 실 거래가격이 24억 5000만원 선에서 움직였지만 공시가격은 이보다 높은 27억 1300만원이다. 공시가격 발표 이후 집주인은 해당 물건의 매맷값을 2억 6300만원 올려 내놨다.
이 같은 문제는 매맷값 상승으로 이어졌다.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 있는 인접 단지인 래미안옥수리버젠과 e편한세상옥수파크힐스 전용 59㎡(13층)의 경우 올해 공시가격은 각각 10억 1500만원, 9억 4300만원으로 작년보다 각각 29.3%, 24.6% 올랐다.
지난해 마지막 거래 기준 실거래가격은 e편한세상옥수파크힐스(15억 2500만원)보다 래미안옥수리버젠(14억 6000만원)이 높았지만, 공시가격에서는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e편한세상옥수파크힐스 인근 D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3~4억원 선에서 거래가 이루어졌지만 최근에 소유자들이 물량을 회수하는 추세"라며 "소유자들 대부분 기존 가격보다 높게 나온 공시가격으로 인해 매맷값을 높여서 처분해야 할지에 대한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세대로 불리는 20~40세대가 '노도강'(노원·도봉·강북) 등 강북지역의 아파트 매매가 활발하게 이뤄진 지역은 기존 가격보다 높은 공시가격으로 매물을 회수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 신동아아파트 (전용면적 70㎡)와 노원구 상계동 성원아파트(전용면적114.76㎡)의 올해 공시가격은 4억 2700만원·4억 2900만원이지만 최근 시장에 나온 거래금액은 이보다 높은 4억 6700만원·4억 7000만원에 가격이 형성됐다.
[서울=뉴스핌] 백인혁 기자 =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본부장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열린 서울 아파트 시세·공시가격 정권별 분석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0.11.11 dlsgur9757@newspim.com |
◆"시장 가격 무시한 산정 방식이 가장 큰 원인"
전문가들은 정부의 '깜깜이' 산정 방식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정부의 공시가격산정은 '공동주택가격 조사·산정기준'에서 정하는 가격형성요인을 반영해 산정한다. 가격형성요인 반영비율은 시세현황을 참고해 결정한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실제 거래 가를 반영하지 않은 채 샘플만 축출해서 매크로 공식으로 가격을 산정하다보니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아파트 단지에서도 동과 층수에 따라 형성된 가격이 있음에도 일괄적으로 공시가격을 책정하면서 여러 문제점이 유발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 및 경인여대 교수는 "한국부동산원과 지역 전문가 등이 참여하지 않은 채 정확한 공시가격이 나올 수 없다"며 "과세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이 단기간에 급상승하면 국민의 조세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ymh753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