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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불법 촬영이 범죄라는 당연한 사실

기사등록 : 2021-04-1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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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정화 기자 = 5년 전 비로소 폐지된 소라넷은 모든 여성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대형마트, 지하철, 길거리 등 일상의 모든 곳이 불법 촬영의 위험지대가 됐다. 길 건너편에서 몰래 촬영한 잠옷이나 속옷 차림의 여성 사진도 있어서 집안도 안심할 수 없었다. 실시간으로 끊임없이 업로드되는 불법 촬영물들은 "나도 어디에선가 찍혔을 수 있다"는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정화 사회문화부 기자

일상 속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와 달리 불법 촬영에 대한 인식은 처참하다. 불법 촬영이 범죄라는 사실을 '홍보'해야 하는 수준이다. 지하철역 화장실에서는 불법 촬영이 범죄임을 알리는 스티커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노선이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 활동가는 "불법 촬영물을 단지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해도 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카메라 등 이용촬영 범죄 발생 건수는 3만1810건에 달한다. 실제 범죄 건수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피해자가 범죄 발생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불법 촬영물은 온라인에서 한 번 유통되기 시작하면 독버섯처럼 빠르게 퍼진다. 하나의 유흥거리쯤으로 소비하는 사람들 탓에 공급도 활발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불법 촬영의 경우 촬영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불법 촬영을 통해 촬영된 촬영물을 사고파는 암시장이 온라인 시장에 존재해 끊임없이 유통된다는 것"이라며 "이 같은 암시장을 단속하고 엄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최근 이른바 '제2의 n번방'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제2의 소라넷'에 대한 수사에도 착수했다. 소라넷이 폐지된 지 5년여 만이며,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조주빈이 검거된 지 불과 1년여 만이다. 경찰은 국내 한 언론매체와 유사한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는 모 사이트에서 불법 촬영물이 제작·유포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상대방의 신체를 동의 없이 촬영한 뒤 불특정 다수가 보는 온라인상에 유포하는 것은 엄연한 범죄다. 경찰 수사에도 불법 촬영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개선이 없다면 제2의, 제3의 n번방과 소라넷은 다시 이름만 바꿔 일상을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노 활동가는 "범죄나 성인지 관점을 체득하기 위한 인권교육과 더불어 체계적인 성교육이 필요하다"며 "지금처럼 시간을 정해놓고 형식적으로 성교육이 이뤄지는 환경에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고 했다. 불법 촬영이 왜 범죄인지를 인권 차원에서 접근하는 디지털 성교육이 절실한 이유다.

 

clea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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