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가상화폐 열풍이 뜨겁다. 비정상적인 가격 급등에 너도나도 가상화폐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대박을 꿈꾸든, 소소한 용돈벌이든 돈을 벌기 위한 투자자들이 가상화폐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가상화폐는 이미 일부 국가에서 화폐 대신 '자산(asset)'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등 투자의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여전히 변동성이 큰 가상화폐 투자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수익보다는 손실을 봤다는 의견이 많음에도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이에 뉴스핌은 실제 가상화폐 시장에 뛰어든 시민들을 만나 가상화폐 열풍의 현실을 조명하고자 한다.
[서울=뉴스핌] 김경민 최현민 이정화 이학준 기자 = 최근 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 등 4대 가상화폐 거래소의 하루 거래액이 20조원을 넘어섰다. 코스피를 추월한 가상화폐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2030세대다. 투자 규모는 다르지만 돈을 벌기 위해 너도나도 가상화폐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11일 4대 가상화폐 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신규 가입자 250만명 중 20대와 30대는 63.5%로 집계됐다. 지난 1월 비트코인 가격이 4000만원을 돌파하는 등 가상화폐 시세가 급등하면서 2030세대에 제2의 가상화폐 열풍이 불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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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킨 값이나 벌려고"…주변 권유·취미로 투자
처음 가상화폐 시장에 뛰어든 2030세대는 주로 소액 투자를 통한 용돈벌이로 시작한다. 주변의 권유로 가상화폐에 관심을 갖게 된 이들의 목표는 "치킨 값이나 벌자"는 것이다.
직장인 최모(32) 씨는 올 초 가상화폐 시장에 뛰어들었다. 직장 동료들의 영향이 컸다. 그는 "회사에서 다들 코인하느라 휴대전화만 보고 있었다"며 "이름이 특이한 가상화폐 2개를 50만원 어치 샀다"고 말했다.
최씨가 산 가상화폐는 일주일만에 30% 올랐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일확천금을 노리진 않는다고 했다. 그는 "사실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대박을 친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코인으로 돈 딴다는 생각은 없다. 지금 넣어 놓은 50만원으로 '존버(끝까지 버티기의 속어)'할 생각이다. 그냥 취미활동에 투자했다고 생각하고 나중에 생각 날 때 한 번씩 들여다 볼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김모(31) 씨는 지난 2017년 처음 가상화폐 열풍이 불 때 시장에 진입했다. 김씨도 최씨처럼 당시 직장 동료가 가상화폐로 원금의 수십 배를 번 것이 계기가 됐다. 치킨 값을 벌자는 가벼운 생각으로 30만원을 넣었는데 금새 100만원을 벌었다.
김씨는 "코인으로 부자가 될 것이라는 허황된 꿈을 꾸지는 않는다"면서도 "저축으로 돈을 모으기도 힘들고, 남들도 다 코인을 하는데 안 하면 뒤쳐진다는 느낌이 든다. 요새 코인이 다시 크게 이슈가 되면서 내 주변에도 용돈을 벌기 위해 들어간 친구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 대박 꿈꾸며…코인 공부에, 직접 채굴도
가상화폐 시장은 변동성이 크고 예측이 어렵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가상자산은 가격 등락 폭이 너무 크고 심해서 리스크가 큰 자산"이라며 "그 자산에 대해서는 결국 투자자의 판단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소위 '한방'을 노리는 2030세대는 늘어나는 추세다. 100만원으로 시작해 1억원을 벌었다는 얘기부터 몇 백억 원을 벌어 당당하게 사표를 썼다는 얘기 등이 전설처럼 내려오기 때문이다. 이제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은 가상화폐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은행원인 최모(34·여) 씨도 단순히 용돈벌이에 그치지 않고 수천만 원대 종자돈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의 줄임말)했다. 이 투자금을 수십억 원대 자산으로 불리는 것이 최씨의 목표다.
최씨는 "안정적인 코인을 찾아서 공부를 하고 투자했다. 주식도 공부를 하는 것처럼, 코인도 공부를 하면 안정적으로 굴릴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며 "하락장이 온 이번에도 거의 원금 손실이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150만원으로 시작했는데 100% 수익이 하루에 나니까 점점 '시드 머니(종자돈)'를 늘려서 갖고 있던 자금 5000만~6000만원을 몽땅 투자했다"며 "30억원을 벌면 은퇴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평범한 직장인이 직접 채굴을 하는 경우도 있다. 개발자인 유모(32) 씨는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자 채굴을 시작했다. 주변에서 "가상화폐가 돈이 된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유씨는 먼저 업무상 갖고 있던 여유분의 그래픽카드(GPU) 1장을 채굴기로 활용했다.
유씨는 "생각보다 많은 수익을 주길래 공격적으로 해보면 어떨까 싶은 마음에 갖고 있던 사비를 모두 털어서 GPU를 샀다"며 "당시엔 3달 만에 원금 회수가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지금은 시세가 더 올랐다"고 전했다.
유씨는 지난 2월부터는 GPU 10여대를 이용해 채굴기를 돌리고 있다. 실제 GPU 품귀 현상도 있다고 한다.
유씨는 "요새 직장 월급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집도 사기 힘들고 저축도 힘든데 남은 방법은 가상화폐 뿐이라고 판단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면서도 "투자는 누군가 따면 그만큼 누군가 잃는 것이라, 허황된 꿈을 쫓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 24시간 휴대전화 확인…빨간불·파란불에 일희일비
가상화폐 열풍은 24시간 휴대전화만 붙잡고 있는 부작용도 낳았다. 가상화폐 거래소는 주식 시장과 달리 24시간 운영된다. 이에 시세를 확인하느라 하루 종일 습관적으로 거래소 애플리케이션을 들락날락거리는 것이다.
취업준비생인 이모(31) 씨는 지난 달까지만 해도 휴대전화를 통해 수시로 거래소를 들여다보곤 했다. 거래소에서 가상화폐 시세를 보느라 밤잠을 설쳤고, 결국 취업 준비도 소홀해질 정도였다.
이씨는 비트코인에 이어 이더리움, 도지코인 등 가상화폐의 시세가 급등하면서 코인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처음엔 호기심이었다. 물론 치킨 값을 벌려는 욕심도 조금 있었다. 1만원으로 시작해 200만원까지 투자금을 늘렸다.
한때 수익률이 40%까지 났지만 이씨는 최근 가상화폐 투자를 그만뒀다. 상승세를 의미하는 빨간 불이 들어오면 날아갈 듯 기뻤다가도, 파란 불이 켜지면 끝없는 우울함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씨는 "용돈벌이로 하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하루 종일 휴대전화만 쳐다보고 있는 내가 초라해 보이고 한심하게 느껴졌다"며 "도박에 빠지기 전에 나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직장인 박모(30) 씨도 가상화폐를 시작한 이후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밥을 먹을 때도, 잠깐 화장실 갈 때도 가상화폐 시세를 확인하고 관련 정보를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박씨는 "1분 단위로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기에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며 "전재산을 모아 크게 한탕 하겠다는 생각이라면 정말 말리고 싶다"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km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