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슈퍼사이클(장기호황) 진입을 눈앞에 둔 국내 조선업계가 '깔딱고개'를 넘고 있다.
올해 1~4월 조선3사(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가 수주한 금액은 작년 같은 기간의 7배에 달하는 16조2000억원. 한국조선해양은 최근 조선업황이 슈퍼사이클 진입 직전인 지난 2003년 수주 상황과 비슷하다.
연이은 수주 '잭팟'에도 불구 올 1분기 조선업계 실적을 바닥을 쳤다. 지난해 경기 침체에 따른 수주 부진과 저가 수주, 원자재 가격 상승 여파가 1분기에 고스란히 반영되면서다. 올해 수주한 물량이 실적에 반영되기까지 최소 1년. 올해 조선업계의 최대 과제는 슈퍼사이클 진입까지 허리띠를 졸라매고 버티기다.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초대형LPG선의 시운전 모습 [제공=한국조선해양] |
◆1분기 만에 연간 수주 목표 절반 '뚝딱'
1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조선3사는 연 초부터 이어진 수주 랠리로 연간 수주 목표치를 빠르게 채워가고 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조선3사의 수주 금액은 16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조4000억원) 보다 7배 가까이 늘었다.
현대중공업은 올 1분기에만 조선, 해양플랜트를 더한 모든 사업 분야에서 38억5700만 달러를 수주해 연간 수주 목표인 88억8800만 달러의 43.4%를 달성했다.
조선부문을 보면 컨테이너선 13척을 비롯해 총 27척의 선박을 28억3200만 달러에 수주, 연간 수주(66억 달러) 목표치의 42.9%를 채웠다. 해양플랜트부문은 올 초 미얀마 가스전 3단계 개발 사업의 본계약을 체결하며 2년 3개월 만에 신규 공사를 확보했다.
삼성중공업도 지난 3월 단일 선박 건조 계약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총 20척의 컨테이너선을 2조8000억원에 수주하면서 신바람을 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달까지 총 42척, 51억 달러를 수주하며 올해 수주 목표치인 78억 달러의 65%를 사전에 달성했다. 이에 따라 수주잔고도 258억 달러로 늘어나며 최근 5년간 가장 풍부한 일감을 확보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달 말 기준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11척, 초대형 LPG운반선 9척, 컨테이너선 4척 등 총 24척 약 22억1000만 달러를 수주해 올해 목표인 77억 달러 대비 약 28.7%의 수주를 달성했다.
올해 들어 조선업계가 수주에 힘을 내고 있는 이유는 세계 경제 회복 기대감에 따른 해상 물동량이 늘어난 덕분이다.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세계 선박 발주량은 지난해보다 53% 증가한 총 3150만CGT가 발주될 전망이다. 특히 컨테이너선을 비롯한 해상 운임의 지속적인 상승이 선박 발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가 강점을 보이고 있는 친환경 선박에 대한 수주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2000년대 초중반 조선업 전성기 시절이 재현될 수 있다는 밝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컨테이너선 전경 [제공=삼성중공업] |
◆조선업 호황이라는데 '5000억 적자'는 왜?
'슈퍼사이클'에 진입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조선3사의 1분기 경영 실적은 기대치를 한참 밑돌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1분기 '어닝쇼크'로 시장에 충격을 줬다. 지난해에도 1조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삼성중공업은 연간 손실의 절반에 해당하는 5068억원의 적자를 1분기에 기록했다.
현대중공업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매출은 1조9881억원, 영업이익 284억원으로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8.7% 줄었고 영업이익은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소폭에 그쳤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아직 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대우조선해양도 매출액은 1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 하락하고 20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적자전환할 것으로 내다봤다.
1분기 수주 랠리가 실적에 반영이 되지 않는 이유는 수주 후 공사 진척 상황에 따라 대금이 지급되는 수주 산업의 특성 때문이다. 이 같은 시간차로 올 1분기 실적은 지난해 경기 침체로 극심한 수주난을 겪은 상황이 그대로 반영됐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과 저유가 영향으로 수주가 급감해 내년까지 도크 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며 "이로 인해 도크 가동율을 높이기 위한 긴급 물량 확보 과정에 일부 선종에서 발생한 공사손실 충당금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또 "올해 상반기 강재가 인상이 예상 폭을 훨씬 웃돌아 제조원가가 크게 상승하며 적자 폭을 키웠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현대중공업의 경우 중대재해로 인한 장기간의 작업 중지가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8일에도 40대 노동자가 원유 운반선 내부에서 용접작업 도중 추락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며 또 다시 조업이 중단 위기에 처했다.
◆'슈퍼사이클' 진입까지 비상체제..저가수주 탈피 기대
조선업계는 올해 수주한 물량이 실적에 반영되기 까지는 최소 1년의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조선업계는 내년까지 허리띠를 졸라매고 '보릿고개'를 넘어선다는 전략이다.
1분기 5000억원대 적자를 기록한 삼성중공업은 5대 1 무상감자와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하며 경영정상화를 위한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삼성중공업은 이번 조치로 향후 추가 수주에 대비한 RG(선수금환급보증) 한도를 확대하고 차세대 친환경 선박 개발과 스마트 야드 구축 등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자금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중공업도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선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사장은 1분기 경영발표에서 "연초부터 살아나고 있는 신규 수주로 장기간 불황이 끝날 것이란 기대감이 높지만 실제 수익성에 있어서는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대와 현실이 상충되는 상황을 잘 극복해 내는 것이 올해 우리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올 초와 비슷하게 선박 발주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게 되면 저가 수주 관행도 사라져 조선사의 실적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을 전망이다. 지난해 조선사들이 물량 확보를 위해 무리하게 저가 수주에 치중했다면, 올해는 풍부한 수주 잔고로 조선소 도크가 모자라 조선사가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고 선별 수주가 가능할 것이란 기대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올 들어 한국 조선사들이 일감 부족을 상당 부분 해소했고 향후 발주 증가 및 선가 상승 전망도 긍정적"이라며 "올해 수주 목표를 78억 달러에서 91억 달러로 상향했으며 2분기부터 수익성 위주의 선별 수주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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