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정탁윤 기자 = 불혹을 넘기니 병원에 갈 일이 전보다 잦아졌다. 30대엔 병원 문턱조차 가본적이 없다. 허리가 아파서, 4살짜리 아들녀석 재우다 발에 눈을 세게 맞아서, 골프치다 옆구리가 결려서 등등. 치료를 받고 나면 진단서 또는 입퇴원확인서, 진료비계산영수증, 진료비세부내역서 등을 떼야 한다. 한번은 입퇴원확인서를 떼느라 1시간 넘게 기다린 적도 있다.
그렇게 필요서류를 떼고 사진으로 찍어 보험사 앱에 접속해 실손보험료를 청구하곤 하는데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진료비가 100만원이 넘을땐 팩스나, 우편, 또는 직접 보험사 지점을 방문해야 한다. 비대면으로 손가락 하나 까딱 하면 은행 대출도 받을 수 있게된 시대에, 직접 방문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 모든 불편함과 귀찮음을 10년 넘게 지속하고 있는 것은 의료계 때문이다.
[서울=뉴스핌] 정탁윤 금융증권부 차장 2021.05.13 tack@newspim.com |
의료계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반대 명분은 개인 의료정보 침해 우려다. 병원에서 전자문서로 개인 의료정보를 보험사로 바로바로 전송할 경우, 보험사가 개인의 상해나 질병을 미리 파악해 나중에 보험 가입을 거절하거나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뇌피셜로 볼때 일견 그럴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업계에선 의료계의 진짜 반대 이유를 바로 '비급여 통제' 가능성 때문으로 보고 있다. 도수치료나 비급여 주사, 자기공명영상(MRI) 등 여러 치료 항목중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치료비를 비급여라 한다. 병원들은 그동안 이 비급여로 과잉진료 논란을 일으키며까지 돈을 벌어 왔다. 비급여 항목이 어떤 것이 있는지 정확히 공개하지도 않았다.
정부는 현재 국민 의료비 경감 차원에서 모든 의료기관의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를 의무화하는 것을 추진중이다. 여기에도 의료계는 반대하고 있다. 개인정보 침해 우려를 이유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반대하고 있는 의료계의 명분이 약해지는 대목이다. 비급여로 병원 영업 하겠다고 3800만 실손보험 가입자의 번거로움을 나몰라라 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수 년간 소수의 '나이롱 환자'들이 경미한 교통사고에도 한방병원에 일주일 넘게 누워 보험사들의 실손보험 재정을 축냈다. 그 결과는 나머지 선량한 보험 가입자들의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졌다. 나이롱 환자도 반성해야하고 제도적으로 나이롱 환자들의 과도한 보험 이용도 막아야 한다. 오는 7월부터 의료 이용이 많은 가입자에게 더 많은 보험료를 내게 하는 '4세대 실손보험' 도 출시된다.
금융당국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올해 '5대 중점과제'로 정했다. 국회에는 청구 간소화법이 현재까지 5개 정도 발의됐고, 곧 논의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의료소비자와 금융당국 및 정치권, 보험사까지 노력하고 있는데 의료계는 여전히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와 관련된 의료계의 전향적 입장 변화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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